[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19) 궁(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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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탁 기자
수정 2006-04-04 00:00
입력 2006-04-04 00:00
삼국시대 이래 조선조까지 우리의 역사는 군주가 나라를 통치하는 왕조체제였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문 500년 역사를 인정받고 있다. 조선사회에서 정치·행정의 중심지였던 궁궐은 그 시대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의 공간이며 생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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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중앙집권적 국가의 왕이 거처하면서 정치를 행하던 곳이기 때문에 궁궐이란 곧 왕궁을 가리킨다.(경복궁 흥례문)
‘궁궐’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중앙집권적 국가의 왕이 거처하면서 정치를 행하던 곳이기 때문에 궁궐이란 곧 왕궁을 가리킨다.(경복궁 흥례문)
궁궐은 신전이나 종교건축과 더불어 규범과 격식을 갖춘 당대 최상의 건축물이다. 건물들은 풍수지리에 따라 지어졌으며 저마다 쓰임새가 달랐다. 기능에 따라 정사를 위한 정무 공간, 일상생활을 위한 생활공간, 휴식과 정서를 위한 정원공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무공간이 앞에 오고, 생활 건축물은 뒤편에 배치하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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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대제는 옛날 국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나라 사당에 제사 지내던 의례를 재현(再現)하는 형식적인 연출이 아니고 실제로 왕손들이 제례를 봉행하고 있다. 생전의 황세손 이구씨가 제례에 참석한 모습.
종묘대제는 옛날 국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나라 사당에 제사 지내던 의례를 재현(再現)하는 형식적인 연출이 아니고 실제로 왕손들이 제례를 봉행하고 있다. 생전의 황세손 이구씨가 제례에 참석한 모습.
한국의 궁궐은 중국의 자금성(紫禁城)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다. 당시 전체주의적 의식구조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우선 자연을 생각하고 자연에 거슬리지 않는 규모와 비례에 눈을 돌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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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야외촬영 장소로 활용되는 고궁은 현대적인 예식의복장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덕수궁)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의 야외촬영 장소로 활용되는 고궁은 현대적인 예식의복장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덕수궁)
대표적인 궁궐인 경복궁은 명실공히 조선의 정궁(正宮)으로서 건국의 의지와 왕도(王都)에 따르는 명당 풍수설, 유교 사상 등이 가장 잘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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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은 이층의 월대 위에 올라앉아 있다. 월대 위에는 돌난간을 두르고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근정전을 호위하고 있는 각종 근위 서수들(상서로운 상상속의 동물)을 배치했다.
경복궁 근정전은 이층의 월대 위에 올라앉아 있다. 월대 위에는 돌난간을 두르고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근정전을 호위하고 있는 각종 근위 서수들(상서로운 상상속의 동물)을 배치했다.
종묘는 유네스코 등록 세계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음악과 함께 연주 장소로서 독특한 건축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위패를 모신 각각의 신실(神室)도 눈길을 끈다. 신실은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나 건물 칸마다 한 왕의 위패를 모시기 때문에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선이 강조되어 있다. 월대의 한없이 넓게 펼쳐지는 돌바닥도 정전 앞 공간의 엄숙함과 고요함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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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구자탕(悅口子湯) 일명 신선로(神仙爐). 조선시대에는 왕가의 음식과 그 제도가 우리 민족의 음식을 대표할 만큼 다채로웠다.(문화재 보유자 후보 한복려 작)
열구자탕(悅口子湯) 일명 신선로(神仙爐). 조선시대에는 왕가의 음식과 그 제도가 우리 민족의 음식을 대표할 만큼 다채로웠다.(문화재 보유자 후보 한복려 작)
조선의 궁궐은 지금도 서울 한복판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현대식 콘크리트 숲속에서 정도(定都) 600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과거의 건물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쉽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뿐 아니라 600년 전과 다름없는 종묘의 제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 역시 하나의 문화적 경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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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복식문화도 예를 표현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목적을 가장 중시하였으며, 그 외에 그 시대적인 미적 예술감각의 표현 등에 부응하여 500년간 변천되어 왔다.(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조는 복식문화도 예를 표현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목적을 가장 중시하였으며, 그 외에 그 시대적인 미적 예술감각의 표현 등에 부응하여 500년간 변천되어 왔다.(국립고궁박물관)
전제군주 국가에서 왕실의 권력을 표현하는 복식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시되었다. 조선의 궁중의상은 종류와 재료는 물론 색상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왕의 위엄과 권위를 보여 주고, 왕비의 기품과 우아함을 느끼게 해 준다. 흔히 왕이 집무시에 착용한 예복으로 알려진 곤룡포(袞龍袍)에는 왕을 상징하는 문양인 용을 금실로 수놓아 만든 원보(圓補)가 가슴과 양어깨를 장식하고 있다. 어느 옷보다도 화려하면서도 왕의 위엄을 더해 주는듯하다.

왕과 왕실의 건강과 가장 밀접한 식생활 문화인 궁중음식은 전통적인 한국음식을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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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능행도는 정조 임금이 화성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에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당시의 풍속, 예식, 복식 등 사회상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보여준다.
수원능행도는 정조 임금이 화성에 있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에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당시의 풍속, 예식, 복식 등 사회상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보여준다.
각 고을에서 진상하는 최고의 재료가 조리기술이 뛰어난 주방상궁과 대령숙수(待令熟手)들의 손에 의해 가장 잘 다듬어져서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생활양식과 문화가 상호 교류되었던 서울 양반가의 음식이 흡사하지만 궁중음식과는 이름을 달리하였다. 아무리 지위가 높은 관료라도 임금님께만 차리는 12첩 반상은 들지 못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궁중문화는 500년 조선시대 문화 예술사의 실천 주역 중의 하나이다. 또 왕실의 문화는 귀족과 평민문화의 본보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외교류를 통하여 국가의 문화적 위상을 드높이는 데에도 앞장섰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왕실문화는 바로 조선 왕실의 문화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성취한 고급문화의 정수(精髓) 자체인 것이다.

글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2006-04-0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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