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은행대전’ 이끈 행장들의 튀는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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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구 기자
수정 2005-12-22 00:00
입력 2005-12-22 00:00
“에스키모인들은 들개를 사냥할 때 날카로운 창에 피를 발라 들판에 세워둔다. 피냄새를 맡고 모여든 들개들은 추운 날씨 탓에 혀가 마비돼 칼날을 구분하지 못하고 계속 핥는다. 자기 혀에서 피가 나와도 누구의 피인지 분간하지 못하다 끝내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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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신상훈 행장은 지난 9월 월례조회에서 타성을 깨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설명하면서 이런 섬뜩한 예를 들었다.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도 지난 4월 월례조회에서 오래 사는 솔개의 비결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솔개는 40년쯤 살면 부리가 너무 길게 자라 먹이를 쪼을 수 없어 죽게 되지만 부리를 바위에 짓이기는 고통을 참은 솔개는 30년을 더 산다는 것이었다. 올해 은행장들의 월례조회사를 돌아보면 ‘은행 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됐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행장들은 온갖 수사(修辭)로 직원들의 ‘전투 의지’를 부추겼다. 흥미롭게도 시중은행 가운데 ‘리딩뱅크’를 놓고 경쟁하는 국민, 우리, 신한은행만이 다달이 월례조회를 하고 있다.

행장의 말 속에 은행 전략 있다

행장들의 말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총력전’이다.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은 올초 “2005년은 재도약의 기회이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결전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은행 황 행장은 “은행 대전의 심판자는 고객”이라고 선언한 뒤 공격경영을 진두지휘했다. 신한은행 신 행장은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신무기를 가져야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1년 내내 총론은 영업대전에서 승리하자는 것이었지만 각론은 은행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랐고, 이런 차이는 각 은행의 전략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 강 행장은 상반기 동안의 월례조회에서는 주로 내부 역량강화를 주문했다. 특히 거액의 양도성예금증서(CD) 횡령사고를 기점으로 내부통제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상반기 동안 부실 대출을 과감히 줄여 나갔고, 이에 따라 자산도 감소했다. 반면 새로운 내부통제와 고객관리 시스템 개발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더 이상 시장을 내주지 않겠다.”는 강 행장의 지난 9월 발언을 신호탄으로 공격경영으로 급선회했다.11월에는 외환은행 인수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우리은행 황 행장은 올초 8000원대에 불과하던 주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식가치 극대화가 은행대전 승리의 지표”라고 천명했다. 영업전략을 주식가치 증대에 맞춘 결과, 연말에는 주가가 2만원을 돌파했다.9월부터는 경쟁은행들의 ‘아킬레스건’인 지분구조를 들먹이며 ‘토종은행론’을 내세웠다.

신한은행장은 조흥은행과의 통합을 고려해 조직 결속력 강화와 고객이탈 방지를 끊임없이 주문했다.

스타일은 3인3색

3명의 은행장 가운데 ‘어조’가 가장 강렬한 사람은 신한은행 신 행장이었다. 그는 ‘전쟁’,‘신무기’,‘필사즉생’,‘승자의 재앙’ 등 자극적인 용어를 즐겨 썼다. 또 ‘타성에 젖은 들개’나 버팔로 무리가 점차 속도를 내며 달려가는 방법 등의 비유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안창호 선생이나 이순신 장군도 종종 인용됐다.

신 행장이 큰 틀에서 ‘화두’를 던지는 화법을 썼다면 우리은행 황 행장은 영업 전략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스타일이다. 대출금리를 시장금리에 맞춰야 하는 이유, 심사역 평가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을 자세하게 설명했다.8월에는 저금리 시대가 끝났음을 선언하고, 이에 맞는 상품 개발을 지시했다.9월에는 ‘8·31부동산대책’ 이후의 영업전략을 제시했다.

국민은행 강 행장은 격려와 질타를 적절하게 조화시켰다.4월에는 “어느 은행도 최대은행의 자리를 10년 넘게 지킨 은행이 없다.”며 다그쳤다. 그러나 11월에는 “자산 300조원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했다.”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2005-12-2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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