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新40대기수론] ‘40대 기수론’ YS·DJ가 원조
박준석 기자
수정 2005-11-22 00:00
입력 2005-11-22 00:00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지명전에서 승리한 김대중씨는 이듬해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에게 불과 94만표 차로 패배,40대 기수론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음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이후 ‘40대 기수론’은 원조격인 양김에 의해 철저하게 땅속에 묻혔다.‘3김시대’가 90년대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고개를 든 것은 2000년 정동영(47)씨가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당선되면서부터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2005-11-2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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