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규 뺀 현대그룹 대북사업 ‘새판짜기’
현대아산은 5일 이사회를 열고 김 부회장의 부회장직 보직 해임을 결정했다.11월22일 임시주총을 소집해 등기이사직에서도 해임할 예정이다.
김 부회장은 지난 8월19일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직을 박탈당한뒤 50여일 만에 부회장직에서마저 물러나면서 현대와 공식 결별하게 됐다. 서울대 공대(기계공학)를 졸업하고 1969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지 36년 만이다.
현대아산 윤만준 사장은 “대표이사직 해임 이후 김 부회장 인사문제가 너무 많이 회자되면서 남북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부회장직 해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김윤규 파동’은 김 부회장 개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고 현대그룹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 모처럼 활기를 띠던 금강산관광은 한달 넘게 파행이 계속되고 있고 개성관광, 백두산관광 추진도 사실상 ‘올스톱’됐다. 게다가 김 부회장의 비자금에 남북협력기금이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통일 종자돈’이라 불리는 협력기금의 투명성마저 흔들리게 됐다.
고 정몽헌 회장이 유서에서 “명예회장님(정주영 회장)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라고 밝힐 정도로 막강한 신임을 받았던 김 부회장은 정몽헌 회장 사후 현정은 회장이 취임하면서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대아산은 지난 3월 이사회에서 윤만준 고문을 공동대표이사로 임명하며 김 부회장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김 부회장은 이후에도 ‘현대건설 인수’,‘현대아산의 아파트사업 진출’ 등 톡톡튀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건재함을 알렸고 7월16일에는 현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을 성사시키며 몸값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미 현 회장은 6월27일부터 7월8일까지 11일간에 걸친 현대아산 감사를 통해 김 부회장의 비리를 소상히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 회장은 김 부회장의 비리에 격노했지만 ‘온건파’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표이사직만 박탈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으려 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의 비리 사실과 대표이사 박탈 방침이 언론을 통해 먼저 공개되면서 현대와 김 부회장의 갈등은 더욱 커지고 말았다.
김 부회장은 “역사적 사명으로 대북사업에 일생을 바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지만 이는 지엽적인 문제”라며 감사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현 회장도 비리경영인의 복귀는 있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맞섰다.
이후 중국과 미국을 오가던 김 부회장이 9월20일 귀국하면서 현대에서 계속 대북사업을 맡고 싶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하자 현대그룹도 그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하지만 현대와 김 부회장의 만남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이 김 부회장은 또다시 출국했고 9월30일자 언론에 남북협력기금 유용 의혹까지 포함된 그의 비리내역이 상세히 알려지면서 김 부회장의 복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 ‘현정은 체제’를 인정하고 그룹의 결정을 좀더 일찍 받아들였으면 양측 모두 상처를 덜 받았을 텐데 파국으로 끝나게 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북측이 김윤규 없는 현대를 단독 파트너로 인정해 줄 것인지는 과제로 남았다. 현대가 2002년 북측으로부터 받은 50년간 ‘토지이용증’에는 ‘현대아산을 대표하여 회장 정몽헌, 사장 김윤규’로 명시돼 있다. 정몽헌 회장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김 부회장마저 현대그룹을 떠나면서 현정은 회장이 토지이용증 등 대북사업 ‘승차권’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