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朴대통령 “6억弗이 마지노선” 훈령
이지운 기자
수정 2005-08-27 11:00
입력 2005-08-27 00:00
박정희 대통령은 62년 11월8일자로 직접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훈령을 내려 “청구권에 관하여, 명목을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으로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청구권에 대한 변제 내지 보상으로 지불될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킬 수 있는 표현이 되어야 할 것임을 강조할 것”이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총액에 대한 지시는 더욱 구체적이다.“순 변제와 무상조의 합계액이 차관액보다 많아야 하며 총액이 6억불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라.”고 훈령을 내렸다. 이어 “만약 무상조가 3.5억불 이하로 내려올 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라.”면서 공적원조 부채액을 포기시킬 것 등 3개항의 지침을 따로 보냈다.
일부 문서는 ▲발신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수신 ‘국가정보 부장’ ▲제목은 ‘대일 절충에 관한 훈령’으로 돼있다. 양자 회담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져 ‘김-오히라 메모’를 도출했다. 메모는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 이상’으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할 총액의 대강을 적고 있으나 자금 명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메모는 두 장짜리로 간략하게 구성됐다. 유상·무상·수출입 차관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양측의 요구조건을 먼저 기재한 뒤 각 항마다 ‘이것을 ∼한 조건으로 양 수뇌에게 건의한다.’는 합의내용을 담고 있다.
김종필 부장은 “단독회담 후 생길 수 있는 해석의 차이를 방지하기 위해 메모를 남기도록 하자.”고 제안했고, 오히라 외상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거액의 별도 정치자금 제공설 등 갖가지 의혹에 시달렸고, 이에 김 부장은 두 차례나 외유길에 오르는 시련을 겪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2005-08-2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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