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日王도 알았었다
수정 2005-05-11 07:05
입력 2005-05-11 00:00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는 1895년 10월8일 시해사건 발생 당시 서울 주재 일본 일등영사였던 우치다 사다쓰지가 같은 해 12월에 작성한 본국용 보고서가 일왕에게도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1896년 1월4일에 본국 외무성 정무국에 접수된 ‘우치다 보고서’에는 비서실이 일왕에게 보고하고 결재받았다는 ‘상주(上奏)’ 표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상주 표시는 1월11일이고, 시해범에 대한 히로시마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1월20일이었다.
앞서 이 교수는 시해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우치다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는 경복궁 옥호루(玉壺樓) 실내라는 기존 설을 뒤엎고 경복궁 안 장안당(長安堂)과 곤령합(坤寧閤) 사이 앞마당이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우치다 보고서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명확하게 알고 있던 일본 외무성이 시해범 재판에 이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사실상 사건 은폐를 묵인했다고 주장해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5-05-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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