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회 수렁에서 구해낸 내딸
수정 2005-03-15 13:52
입력 2005-03-15 00:00
온 나라가 일진회 문제로 떠들썩했던 지난 12일 새벽. 김영희(47)씨는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서울과 부산 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A4 4장 분량의 글에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 이모(16)양이 일진회에 들어가 방황했던 시절부터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모범생이 된 사연을 쓴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일진회에 가담한 학생을 둔 부모들에게 ‘아이가 어른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일진회 문제를 감추고 덮어두기에 급급한 교육청과 많은 학교들이 반성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올렸습니다.”
김씨가 딸의 일진회 가입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중 2때인 지난 2003년. 어릴 때부터 친구들의 인기와 다른 학부모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는 모범생이었던 딸의 일진회 가담은 충격이었다. 그는 “어릴 때 모델 활동을 했던 딸 애를 선배들이 입학하자마자 ‘얼짱’이라며 가입시켰다.”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에는 이미 일진회 ‘짱’을 맡고 있을 만큼 ‘세뇌돼’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단순히 ‘학교 내 불량서클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신문에 보도된 일진회 얘기는 거의 사실”
일진회 아이들의 비행을 김씨는 딸을 통해 목격했다. 김씨는 “일진회 아이들은 줄담배를 피우고 소주 2∼3병은 가뿐히 마시는 것은 물론 남자아이들과 혼숙도 한다.”면서 “딸애가 다른 학교 조직의 일진회 아이들과 소위 ‘맞짱’을 뜨고 오는 날에는 이곳저곳 멍들고 다친 모습을 봐야만 했다.”고 말했다. 또 “필요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의리를 확인 하는 차원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면서 “그 외 자기들끼리 모여 파티(일일 카페)를 여는 등 신문지상에 묘사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진회 얘기는 거의 사실”이라고 했다. 일진회의 실체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김씨는 “일진회는 서울 전역에 깔려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학간 학교 선생님들 도움으로 정상생활
결국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딸을 연고도 없는 부산의 한 중학교로 보냈다. 이양은 전학간 학교에서도 문제 학생들과 어울렸지만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점점 바뀌었다. 선생님들은 ‘너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부터 잘해보자.’며 아이에게 용기를 주었다. 바이올린 등 특기를 살려주고 끊임없이 칭찬해주면서 마음을 바로 잡아주었다. 전교 꼴찌 수준에서 3학년 기말고사에서는 전교 24등, 반에서 2등을 할 만큼 성적도 향상됐다. 다시 서울의 한 고교로 전학을 온 이양은 지금 바이올린과 학업을 계속하면서 또래들과 같이 평범한 고교 생활을 하고 있다.
김씨는 달라지는 딸을 보면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예전 중학교 선생님들에게 대한 원망이 더 커졌다.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달라질 수 있는 아이를 ‘문제아’라는 낙인을 찍어 버린 채 외면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본인이 알아서 일진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 문제아는 전학 보내면 그만이라는 식의 학교 이기주의가 일진회 문제를 덮어둔 채 키워왔다.”고 꼬집었다. 문제를 부모와 함께 해결하는 학교와 교육청이 되기를 김씨는 바라고 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2005-03-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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