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개인파산 보고서] 파산부 판사들의 속마음
수정 2004-08-06 07:28
입력 2004-08-06 00:00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의 파산전문 변호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다.놀랍게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들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속내이다.
법원이 바뀌고 있다.우리 민법의 근본 원리인 채권자의 권리 보호에서 ‘계약에 의한 채무도 취소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파산부 판사들은 정부의 카드 정책은 철저하게 실패한 정책이라고 입을 모았다.내수를 부양하겠다며 카드를 마구 발급했지만 정작 최악의 내수침체와 불황이라는 더 큰 사회적 고통을 가져왔다는 비판이다.판사들조차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과 카드발급을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1999년 5월 현금서비스 한도를 철폐하고 2001년 4월에는 길거리에서 카드회원을 모집할 수 있도록 했다.이 두 가지 정책은 간단히 설명된다.정부가 국민들 손에 신용카드를 잔뜩 쥐어주고 맘껏 쓰라고 부추기면서 복리의 이자를 수탈한 ‘게임의 법칙’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A판사는 “건실한 가정도 초과지출로 빚이 늘어나면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단숨에 쓰러진다.”면서 “수개월에서 수년씩 카드 돌려막기를 하며 버티다 만신창이가 된 신청인을 보면 왜 이제 왔냐고 호통을 안 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B판사는 사견을 전제로 “지금보다 10배는 더 파산자가 많아져야 한다.방치하면 강·절도,자살,반사회적 범죄가 기존 시스템으로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일어날 수 있다.”면서 “법원에 파산만 신청하면 면책은 기계적으로라도 승인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2002년 개인파산이 20만건을 돌파한 일본은 면책률이 98%에 이른다.서울중앙지법도 면책률이 93%를 상회한다.하지만 지방법원은 면책률이 여전히 60%로 크게 저조하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파산이 ‘사회 안전망’이라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개별 판사의 법률적 판단에 따라 들쭉날쭉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파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기피증도 장벽으로 작용한다.소비자 금융이 활성화된 미국에서 파산은 재정위기에 처한 가계와 개인으로 하여금 ‘질서있는 청산’을 가능케하는 서비스이다.파산이란 일종의 경제규제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라는 인식이 강하다.파산을 징벌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사회적 인식은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C판사는 “간혹 면책제도를 악용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면서 “그러나 대부분의 신청인은 미련하게 돈을 갚으려다 빚만 늘어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이제 정부가 책임있는 답변을 내놓을 차례라는 것이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2004-08-06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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