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세상] 구속된 ‘압구정 10대’ 후견인 나선 40대 주부
수정 2004-04-30 00:00
입력 2004-04-30 00:00
유지혜기자
●엄마 가출·아버지 사망후 찜질방 등 떠돌아
고군은 지난 25일 오토바이로 지나가는 행인의 가방을 날치기하다 경찰에 붙잡혀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됐다.이미 절도 등의 전과가 있는 데다 또래 친구들과 ‘논현 팸’이란 조직을 만들어 학생들의 돈을 빼앗고 폭행한 혐의까지 더해져 중형을 면하기 어렵다고 경찰은 귀띔했다.<서울신문 4월29일자 10면 보도>
고군이 엇나간 것은 2001년 7월 어머니가 가출한 뒤부터.집이 수해를 입자 잠시 친척집에 가 있겠다고 나간 어머니는 그후 연락이 없었다.술로 시름을 달래던 아버지는 2002년 12월 영양실조로 사망했다.친척이라고는 큰아버지 하나뿐이었지만,고군을 맡고 싶어하지 않아 이때부터 고군은 친구집과 찜질방 등지를 떠돌아다녔다.
●“필요한 것은 사랑”
혜영씨는 고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통해 아들과 동갑내기인 고군의 사연을 알게 됐다.아들의 친구는 고군과 함께 날치기를 해 역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었던 것.딱한 사연을 전해들은 혜영씨는 선뜻 고군의 후견인이 되겠다고 나섰다.평소 다니는 교회를 통해 무의탁 노인들을 도와온 혜영씨는 아들 또래인 고군의 처지를 못본 척 넘길 수 없었다고 했다.주변에서는 ‘무서운 10대 전과자를 만나다니 겁도 없느냐.’고 말렸다.그러나 급히 챙기느라 치수를 확인하지 못해 맞지 않는 큰 트레이닝복을 가져다 줬는데도 마냥 좋다고 입는 고군을 보고는 한순간에 마음이 열렸다.혜영씨는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야단만 맞으며 여기까지 흘러온 것 같다.”면서 “아무 데서도 사랑받지 못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옥바라지 하며 친해져야죠”
앞으로 고군의 옥바라지를 하며 천천히 어머니 자리를 메워주겠다는 혜영씨는 “꼭 공부를 하라거나 학교를 졸업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면서 “일단은 빨래라도 해주면서 좀더 친해진 뒤 정말 고군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같이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다.자랑도 아닌데 알리고 싶지 않다면서 굳이 익명을 요구한 혜영씨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은 있어도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남을 돕기에)머뭇거리는 것 같다.”면서 “먼저 손을 내밀기만 해도 올바른 길로 이끌려올 아이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느냐.”며 고군의 손을 꼭 잡았다.
고군 사건을 조사하며 혜영씨와 함께 후견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김창수 강남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사는 “시립여성보호센터 등지에는 갈 곳이 없어 또다시 성매매 등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아이들이 많다.”면서 “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애정과 관심”이라고 강조했다.고군은 “그동안 엄마·아빠가 없어 힘들고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지만,해 드리고 싶은 것도 많았다.”면서 “이제라도 내가 뭔가 해 드릴 수 있는 분이 생겨서 좋다.”며 고개를 떨궜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2004-04-30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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