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흉내낸 ‘압구정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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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4-29 00:00
입력 2004-04-29 00:00
“형들이 정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까봐 담을 넘어서 학교를 다녔어요.얻어맞는 것도 힘들었지만 도둑질까지 시키는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서울 강남에서 ‘상납형 조직’을 결성,학교 주변에서 상습으로 학생들의 돈을 빼앗고 폭행한 같은 초등학교 출신인 10대들이 붙잡혔다.피해 학생들은 2년 동안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이같은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8일 강남구 압구정동 G중학교와 신사동 S중학교 인근에서 재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빼앗고,다른 사람에게 돈을 빼앗아오라고 협박·폭행한 박모(18·K고 1년)군 등 4명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경찰은 김모(16·G중 자퇴)군 등 2명도 같은 혐의로 조사중이다.

박군 등은 2002년 3월 초 G중학교 운동장에서 이 학교 김모(당시 13)군을 협박해 5만원을 빼앗는 등 70여명으로부터 145만원 어치의 금품을 빼앗아 게임오락비 등 유흥비로 쓴 혐의를 받고 있다.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4월 박군을 중심으로 ‘논현 팸(패밀리)’이라는 조직을 결성,‘전과 있는 사람은 일선에 나서지 말고,필요한 자금은 후배들을 시켜 충당하자.’는 등의 강령을 정하고 조직적으로 이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빼앗은 돈을 무통장입금 등으로 ‘대장’인 박군에게 상납하고,액수를 채우지 못한 조직원은 대걸레로 심하게 구타했다. 이들의 범죄행각은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끝에 드러났다.지난 10일 경찰이 G중학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학년 학생 260명 가운데 45명이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12명은 5차례 이상 상습으로 돈을 빼앗기고 폭행당했다.피해 학생 대부분은 “보복이 두렵고,공부하기 바빠 모르는 척 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무서워 담을 넘어 인접 학교 정문을 통해 등하교했다는 G중학교 2학년생 이모(16)군은 “돈을 빼앗아오라고 시켜 그냥 내 돈을 갖다주고 말았는데,점점 액수가 커지더니 수십만원을 가져오라고 했다.”면서 “전화를 받지 않거나 피해 다니면 태권도장이나 권투도장에 가두고 ‘스파링을 하자.’며 때렸다.”고 말했다.동급생 김모(16)군은 “지난달 돈을 안 가져갔다가 5시간 동안 학원도 못가고 압구정동 일대를 끌려다녔다.”면서 “지나가는 할머니의 손가방을 날치기하라고 시키고,큰 상점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오라고 협박했는데 한눈을 파는 사이 겨우 달아났다.”고 털어놓았다.

강남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김창수 경사는 “범행 학생들은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반면 피해 학생들은 학교생활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면서 “학교 폭력은 방치하고 숨길수록 더 악화될 뿐이니 경찰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2004-04-29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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