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서울, 예스 서울신문/“서울신문 사랑은 계속됩니다”37년 애독자 김상윤·박송자씨 부부
수정 2004-01-01 00:00
입력 2004-01-01 00:00
서울신문의 37년 독자인 김상윤(64·서울 노원구 중계본동)·박송자(62)부부.이들이 운영하는 허름한 쌀가게에는 서울신문과 대한매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안방 한쪽에 가보(家寶)처럼 보관된 상자에는 누렇게 변한 서울신문과 5년전 제호가 바뀐 대한매일이 중요 사건별로 차곡차곡 모아져있다.
김씨 부부가 서울신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7년.결혼 첫해에 용산구 진계동 신혼집이 강제 철거를 당한 뒤 정착한 이곳 중계동 언덕 위에서 천막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김씨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TV나 라디오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신문을 구독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김씨는 처음엔 장사가 잘돼 서울신문을 포함해 3개의 일간신문을 구독했다.
각 신문마다 논조는 물론 조·석간 배달 시간이 달라 서로 비교해가며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그러나 김씨 부부는 90년대로 접어들면서 가계사정이 여의치 않아서울신문만 남겨 놓고 다른 신문은 모두 절독했다.김씨는 “변변한 수입이 없어 신문값 한푼이라도 아껴야 했다.”면서도 “그래도 신문 한개는 남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고,서울신문이 세 신문중 제일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신문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결국엔 바른길을 가는 꿋꿋함이 내 인생과 너무나 닮았다.”며 미소를 지었다.김씨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15살 때 고향인 전라도 광산을 떠나 홀몸으로 상경,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한때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도 했다.그러나 마음을 고쳐먹고 용산 미8군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힘들게 학비를 벌어 중·고등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예전에 서울신문을 본다고 하면 주위에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요.그러나 독립언론이 되면서부터 서울신문만큼 균형있는 정보를 담은 신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김씨는 “5년전 제호가 대한매일로 바뀌고 민영화되면서 서울신문이 자기반성과 함께 약자편에서 대안있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너무 믿음직스러웠다.”고 칭찬했다.그는 특히 “새해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가 다시 바뀌지만,지금보다 더 진보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신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한 믿음을 보였다.
이영표기자 tomcat@
2004-01-01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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