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대학출입기자 재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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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5-05 00:00
입력 2003-05-05 00:00
새 정부의 탄생에 적대적이었던 거대언론의 논조를 언론권력의 횡포로 여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또한 ‘자전거 구독’,‘선풍기 보급’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외형적인 팽창을 거듭한 신문의 영업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도도 납득할 수 있다.어쩌면 언론과 정부의 마찰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론과 정부는 적당한 긴장관계에 있어야만 한다.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뿐만 아니라 언론과 정부권력 상호간에는 물론 자본권력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도권력,언론권력,자본권력 사이에 적정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국민생활이 편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나 언론은 진실을 보도할 때만 국민의 신뢰를 얻고 늘 정론을 펼 때만 역사적 책임을 다한다.그렇다면 우리의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고 정론을 펴는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의도적인 거짓이야 있을까만 치열한 취재 경쟁의 부산물일지도 모르는 과장,오보,왜곡이 적지 않다.신문마다 특호활자와 현란한 제목을 남발하여 모든 신문이 ‘스포츠신문’을 닮아가고 있다.
아직도 독자는 신문에 언론이 전하는 ‘남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인다.자신의 이야기가 보도될 때 비로소 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무소불위의 언론권력은 실로 위세당당하다.‘아니면 그만’식으로 명백한 오보를 바로잡는 정정보도에도 지극히 인색하다.
대학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의 애로 중의 하나가 언론문제다.
우리나라 대학에 특유한 현상 중에 하나가 대학에 기자가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이다.전형적인 경우에 관할 경찰서와 함께 담당하고 있다.공권력이 대학과 청년을 유린하던 불행하던 시절의 유산이다.그 시절에 대학의 사건은 곧바로 학생이 경찰에 연행되어 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학술활동이 중심이어야할 대학 소식을 시국사건 중심으로 전하던 불행한 시절의 유습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있다.
‘사쓰 마와리’(경찰서 기웃대기)라는 은어가 통용되듯이 경찰서와 함께 대학은 비교적 경력이 짧은 사건담당기자의 취재력을 시험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그러니까 대학의 문제점을 캐내는 일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언론이 전하는 대학 소식은 왜곡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특히 ‘국민의 정부’ 이후에 더욱 심해졌다는 느낌이다.
아주 드물게 학술활동을 성의 있게 챙기는 고마운 기자도 있지만 그마저도 지면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언제부턴가 대학마다 앞다투어 ‘홍보’에 열을 올리게 되니 결과적으로 더욱 과장,왜곡,오보의 위험이 높아졌다.
누가 뭐래도 대학은 나라의 장래가 걸린 곳이다.대학의 잘못을 꾸짖을 때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보기 싫으니 어느 대학을 없애라,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공공연히 오르내리는 저급의 대중민주주의 정서가 행여라도 학문과 지식을 경시하는 풍조로 이어진다면 나라 전체가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언론도 대학을 취재하는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대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한 유능한 학술기자가 대학에서 일어나는 지성의 소식을 찬찬하게 국민에게 전해 줄 그날이 언제나 오려나.
쾌청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우울로 여는 5월의 아침이다.
안 경 환 서울법대학장
2003-05-0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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