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 ‘산에 들다’ (이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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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1-03 00:00
입력 2003-01-03 00:00
세월 밖 먹 울음을

안으로 되 재우며

가슴속 묻어둔 불씨

봄 풀처럼 돋아나와

돌부처 앉은 자리에

꽃들을 피워낸다

일주문 주련글씨

일체가 없는 것이라고

말씀이 귀(耳)로 남아

생각은 되돌아 온다

눈물도 영글다 보면

사리되어 굳는가

한 생을 종이 접듯

세월을 비워두고 살라지만

뜨신 피 무지개 되어

빈 하늘에 부표로 뜬다

마음이 산에 가 닿으면

그리움도 헹궈질 것을

◆당선소감

세상의 색깔은 빛과 어둠이다.나는 지금 깊은 터널의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대학 초년시절 선배와 동료들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이제는 육군의 신병으로서 겪어 나가는 값진 경험들이 빛을 향해 나가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언젠가는 빛과 어둠이 둘이 아닌 하나로 어우러져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온 천하를 환히 비추는 그런 날이 있을 터이다.

수없이 많은 고뇌와 삶에 대한 물음들이,거대한 짐승의 껍질 같은 소각로에다 나의 창작노트와 수첩을 연기로 날려버린 이후에도 계속 자라나고 있다.

나에게 가장 큰 스승은 아버지와어머니셨다.오늘의 이 기쁨과 영광을 두 분께 송두리째 안겨드리고 싶다.

시인이 될 때 등 두드리며 문을 열어주신 설악산의 조오현 은사님과 시조시인으로 이끌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머지않은 날에 해가 되고,달이 되어 환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약력 81년 서울생

원광대 문창과 2년(휴학중)

육군 현역 복무중

◆심사평

올해 시조 부문 당선작은 이안빈씨의 ‘산에 들다’로 결정하였다.예년에 비해 작품 응모 편수가 엄청 불어났고,작품 수준 역시 그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키가 훌쩍 커버린 것 같았다.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어느 것을 골라도 예년의 당선작 수준을 웃돌 만큼 남다른 개성과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위철)과 ‘부석사 무량수전’(전진환)은 소재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이었다.유·불·선(儒·佛·仙)을 숭상하는 우리 정서상 불교사상은 높은 가치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지만,어느 작가의 소설 ‘부석사’이후 근자에 불교 소재가 문학작품 주제로 너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 두 작품도 그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므로 ‘참신한 맛’이 덜했다.

‘쐐기풀 옷 한 벌조차’(노영임)는 작품의 짜임새는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연초에 신문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춘문예의 특성상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보다 밝고 진취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것이다.‘우담화’(정평림)는 이른바 옴니버스시조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옴니버스시조(혼작 연형시조)는 내공을 많이 쌓아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특히 사설시조의 구성 요건인 서사구조,복선(伏線),걸쭉한 입담,웅장한 스케일,극적 줄거리를 엮어내는 가락,갈등구조,풍자정신,말 엮음,휴지(休止),종장의 대반전 효과 등을 고루 갖추어야 하는데 그만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당선작 ‘산에 들다’는 범상한 소재를 범상하지 않게 요리한 시조솜씨가 색다른 특색으로 다가왔다.사물에 대한 천착과,사물을 바라보는 진지한 태도가 이 신인의 매력으로 보였다.

이근배·윤금초
2003-01-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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