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플로리다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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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11-10 00:00
입력 2000-11-10 00:00
북미 대륙에서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무리는 철새떼만이 아니다.은퇴한 미국의 최상류층도 철따라 미 대륙을 종단한다.이들은 봄부터가을까지 주로 미 북동부 로드아일랜드 주 뉴포트에 거주한다.그러다가 늦가을이면 플로리다주 팜비치로 옮겨 겨울을 난다.‘뉴포트에서팜 비치까지’(from Newport to Palm Beach)라는 말은 미국 서민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인구학 같은 학술서적에도 나오는 부유층의 대표적인 계절별 주거이동 경로이기도 하다.특히 팜비치는 돈많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거주하는 베벌리힐스와는 격이 다른 상류층의별장촌이다.

그러나 플로리다에는 부자들만이 사는 게 아니다.아름다운 해안으로이름난 마이애미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점령’하면서부터 슬럼화한지 오래다.미국에서도 범죄율이 가장 높은 축인 도시다.

그런가 하면 플로리다의 올랜도는 가장 미국적인 도시랄 수 있다.세계 최대의 테마공원인 디즈니월드를 끼고 있다는 점에서다.여기서는전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주술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불어넣고 있다.

이처럼 플로리다는 미국적 다양성이 농축된 주다.바로 그같은 플로리다가 미국의 21세기 초반을 좌우하는 열쇠를 쥐게 됐다.사상 최대의 격전이었던 이번 미 대선에서 민주당 고어 후보와 공화당 부시 후보간 최종 승자를 결정할 승부처인 점에서다.

그동안 공화당은 다수파인 백인사회의 지지를 업고 역대 선거에서플로리다에 철옹성을 구축했다.하지만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흑인과 유대인 등 소수민족 표에다 적극적 의료보장 공약으로 백인 노년층을 파고들었다.반면 공화당은 부시 후보의 조카 조지 P 부시가 멕시코 혈통이 섞인 점까지 활용해 민주당이 강세인 히스패닉과 쿠바난민층을 공략했다.이같은 대접전으로 이 주는 ‘재검표’라는 미국정치사상 진기록을 남기게 됐다.두 후보간 지지율이 미 언론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박빙(razor-thin)으로 압축되면서 초래된 결과다.플로리다가 갖고 있는 인종과 계층의 중층구조가 빚어낸 산물인 셈이다.

플로리다의 재검표는 고어,부시 두 진영 인사들에겐 피말리는 과정이다.그러나 제3자에게는 흥미진진한볼거리를,대미 관계가 중요한우리에게는 미국사회를 들여다볼 있는 소중한 기회의 창을 제공하고있다.

특히 이곳에서 녹색당 네이더 후보의 선전은 고어에게 불리했지만양당 체제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줬다.플로리다는 이래저래 미국의 내일을 읽을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구본영 논설위원kby7@
2000-11-1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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