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들에겐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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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09-09 00:00
입력 2000-09-09 00:00
그동안 극한상태에서 대치하던 정부와 의료계가 공식협상을 갖고자다양한 접촉을 하고 있다.정부건 의료계건 그동안 내세운 명분과 현실적인 내부 제약 때문에 선뜻 협상테이블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먼저 정부로서는 의료계가 요구하는 전제조건들을 수용하기 힘드리라고 본다.그 전제조건이란 것이 의권쟁취투쟁위원장 등 구속자를 석방하는 일을 포함해 수배 해제,의사집회에서의 ‘과잉진압’ 사과 등실정법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같은 조건들을 들어주게 되면 마치 의사들의 위세에 공권력이 항복했다는 듯한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그렇더라도 그 조건들을 수용해 대화를 즉각 시작하라고 정부에 권한다.우리는 공권력이 힘의 논리에 밀려 정당성을 잃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또 이같은 양보가 우리 사회 기강을 흔드는 나쁜 선례로남으리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려를 금치 못한다. 그럼에도 의료체계마비로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리려면, 정부가 일단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권유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상대쪽인 의료계에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정부가 전제조건을 받아들이면 의사들은 즉시 의료현장에 복귀해야한다.그들도 눈과 귀가 있느니만큼 환자들이 현재 겪는 고통을 모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의사들은 그동안 방치했던 환자들부터 돌보는 게 당연하다.그 토대 위에서 대화를 하면서국민을 설득하고 정부에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의사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서 ‘각자 제몫을 하며 다같이잘사는 사회’를 원한다면 이는 최소한의 의무다.

내일이면 나흘간 추석연휴에 들어간다.대화 개시를 그 후로 넘겨서는 안된다.의사들에게는 파업의 연장으로서 나흘이 큰 의미가 없을지모르지만 암 환자를 비롯해 하루가 급한 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기간일 수 있다.당장 오늘부터 폐·파업을 풀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는 한편 대화를 시작하기 바란다.협상의 전제조건이 하루이틀 늦게 충족되더라도 ‘의료 정의’를 실현하는 데 큰지장을 주지않는다. 그렇지만 환자들의 몸에서 자라나는 암세포는하루가 지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의사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시간이 없다.지난 8월1일 의약분업을 본격 시행한 뒤 의사들의 폐·파업 때문에 숨을 거둔 환자들이 이미 적지 않게 발생했다.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환자들의 생명이 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2000-09-0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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