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경제청문회 ‘환란5賊’압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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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9-02-11 00:00
입력 1999-02-11 00:00
‘환란 5적(賊)’은 누구인가. 막바지로 접어든 경제청문회는 환란의 종합적 책임규명에 착수했다.‘한국경제호(號)’가 침몰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난파’의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서 핵심 책임자를 가려내는 작업이다. 특위는 지난달 25일부터 100여명에 가까운 증인·참고인을 상대로 ‘매머드 신문’을 계속했다.“최선을 다했다”는 증인들의 ‘방어망’을 뚫고 환란의 최고 책임자들을 압축했다. 한국경제호의 선장격인 金泳三전대통령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일급 책임자다.국민회의 李允洙의원은 “환란 전과정에서 국정 최고책임자인대통령의 역할이 전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렸다.“97년 5월 아들 賢哲씨가구속되자 국정에서 손을 떼다시피 무정부 상태로 몰아갔다”며 무책임을 추궁했다. ‘일등 항해사’격인 姜慶植전부총리에게는 ‘운영책임’이 돌아갔다.특위는 각 채널에서 올라온 경고음을 묵살,조기대응 실패를 자초했다는 평을 내렸다.특정기업에 유리한 발언으로 기아사태 처리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와 대외신인도 하락에 결정적인역할을 했다는 추궁도 잊지 않았다.무차별적인 단기외채를 들여온 종금사들의 관리 감독 실패와 이로 인한 금융대란 초래도姜전부총리의 주요 책임이라는 지적이다. ‘갑판장’격인 金仁浩전경제수석에게는 ‘조정실패’라는 준엄한 질책이쏟아졌다.경제부처의 조정자 역할을 포기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姜慶植 편들기’에 나서 당시 재경원과 한국은행의 불화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특히대통령에게 환란위기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조기대응 실패라는 결정적 실책을 유도했다는 지적이다. 李經植 전 한은총재는 ‘외환운영’ 실패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듯하다.원화의 고평가 정책을 무리하게 고수하면서 유동성 부족을 초래했다는 평이다. 李錫采전경제수석과 金賢哲씨도 ‘공동 5적’ 반열에 올랐다.특위는 “李전수석의 경우 문민정부 내내 권력 주변에서 시녀의 역할을 했고 PCS 부당 특혜에 앞장서면서 환란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규정했다.賢哲씨는 정권 내내 ‘소통령(小統領)’으로서 각종 인사와 이권에 개입해국정을 농단,정경유착의 대명사가 됐다는 준엄한 평을 내렸다.吳一萬 oilman@
1999-02-1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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