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근대시 이론 태동서/70년대 시비평의 세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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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2-05 00:00
입력 1998-02-05 00:00
“개화기 이후의 우리 근대시는 개화가사,개화시조,창가, 신체시 등을 거쳐 1910년대 중반기의 자유시로 이어졌다.자유시 형태의 등장을 조선시대의 엇시조나 사설시조,그리고 가사에까지 소급하려는 이들도 있지만 시조나 가사는 보통 정형시로 분류된다” 개화기 근대시 이론의 맹아에서부터 1970년대 시비평의 이론적 양상에 이르기까지 한국 시론의 역사를 고찰한 연구서 ‘한국 현대시론사 연구’(한계정 등 지음)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다.
우리 근대시는 1900년대 육당 최남선이 ‘한양가’‘경부텨ㄹ도가’‘세계일주가’ 등을 말하면서 이름붙인 이른바 ‘구가류’라는 낭송시가들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글을 모르는 독자들이 대부분인 시대에 눈으로 읽는 시를 기대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한국 근대시의 성립과정에서 1920년대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최남선에 의해 주도된 신시운동이나 개화기 시가의 설교조 계몽주의는 이 시기에 비로소극복됐다.1910년대 후반에 시작된 ‘폐허’나 ‘장미촌’ 동인들의 서구 상징주의 수용은 이러한 경향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우리가 서구 시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와 시론이 번역·소개되면서부터.초기 상징주의의 수용은 백대진·황석우·김억 등에 의해 이뤄졌다.백대진이 주로 말라르메 중심의 지적 상징주의를 소개한 반면,김억은 베를렌·구르몽·시몬스 등과 같은 감정적 상징주의를 주로 소개했다.
1930년대의 시사적 의미는 무엇일까.1930년대의 한국문학은 ‘전형기’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입장이다.20년대 후반 카프(KAPF),곧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이 차지했던 문학사적 위상과 비교할 때 30년대는 뚜렷한 주조없이 온갖 이론과 사조들이 각축을 벌인시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해방기에서 1950년대 전반에 이르는 우리시론의 양상은 ‘문장’파의 전통주의를 통해 검토한다.전통주의는 속성상 보수적인 경향을 띤다.그러나 ‘문장’파의 전통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전망으로까지 나아간다.가람이 진란에 대해 애정을 보이고 시조창작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나,상허가 골동품과 서화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것,지용이 ‘바다’로부터 ‘산’으로 시선을 옮겨 한시적 발상에 기대 시를 쓴 것,지훈이 고전적 분위기의 시를 쓰고 전통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밝힌 것 등은 그런 맥락에서다.
이 책에서는 또한 김기림과 김종길을 중심으로 한 영미 신비평의 한국적 수용양상을 통해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현대시의 새로운 전망을 살핀다.넓은 의미의 신비평이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1950년을 전후해서이다.신비평의 초기 이론가인 리처즈와 엘리어트의 논저가 번역됐으며,소략하나마 신비평의 기본관점과 갈래에 대한 소개가 이양하·김기림·백철·최재서·김용권 등에 의해 이뤄졌다.특히 김기림이 자신의 저서 ‘시의 이해’를 통해 보여준 리처즈 비평이론은 당시로서는 독보적이라고 할만큼 일목요연하고 정확한 것이었다.물론 ‘내용’과 ‘기교’의 통일을 내세운 형식논리적인 ‘전체시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점은 있었다.이에 비해 김종길은 무엇보다 유기체적 존재로서의 시 텍스트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김기림과 구분된다는 것이 이 책의 지적이다.끝으로 하나의 창작방법으로서의 민중시론과 1970년대 ‘문학과지성’동인의 시론을 다뤘다.<김종면 기자>
1998-02-0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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