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제목의 양면성/유재원 외대교수·언어학(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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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5-05 00:00
입력 1992-05-05 00:00
하지만 그 박식함과 민중의 무지함이 엮어낼 역효과를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역시 문제가 있는 어휘의 사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그래서 한문을 잘 아는 분에게 「면피」란 낱말의 뜻이 무어냐고 한번 여쭈어 보자 그 분도 고스톱을 즐기시는지 씩 웃으며 『고스톱 안 쳐 본 사람처럼 그런 걸 왜 물어?』하며 핀잔을 주었다.한자를 꽤나 잘 아는 사람이 이처럼 착각할 정도면 이 「면피」란 낱말의 사용은 역시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영혼은 한 관념을 바탕으로 다른 연관되는 관념을 떠올리는 연상 작용을 한다.이 연상 작용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영혼의 기능중 하나다.우리 인간은 말을 주고 받는 거의 매 순간에 이 연상 작용에 의해 상대방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하고 그 짐작에 비추어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기 나름대로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한다.그러기에 놀라울 정도로 빠른 시간 안에 우리는 대화를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연상 작용때문에 인간들은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았던 엉뚱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하지도 않은 말을 들은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모든 일이 그렇듯이 연상 작용 자체도 선악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연상 작용을 하여 자신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오해나 역효과가 일어날 낱말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 좋다.더구나 신문과 같은 공기에선 어휘의 선택이 더욱 신중해야 할 것이다.이런점에서 신문지상에 고스톱판을 연상케 하는 「면피」란 단어의 사용은 바람직스럽지 않아 보인다.
1992-05-0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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