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사랑/유재원 외대교수·언어학(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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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2-04-25 00:00
입력 1992-04-25 00:00
최근에 한 친구가 나에게 자기 아이가 다른 과목은 성적이 좋은데 국어 성적이 좀 뒤떨어진다며 국어를 잘하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어왔다.참으로 막연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라 대답하기도 막연했다.책을 많이 읽고 신문도 열심히 보고 항상 국어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게 하면 국어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고 지극히 상식적인 대답을 해주자 그 친구는 영 신통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내가 집에 국어사전은 있느냐고 묻자 없다고 대답했다.그러면 아이가 책을 읽다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어떻게 그 뜻을 찾겠느냐고 추궁하자 수긍이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럼 오늘 저녁에 책방에 들러 국어 사전이나 한 권 사가야겠군」하며 어떤 사전이 좋으냐고 묻기에 최근에 나온 포켓용 국어 사전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집에 국어 사전 한 권조차 없는 마당에 어떻게 자기집 아이가 국어 성적이 좋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어떤 과목도 학생 스스로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그리고 아이들의 관심은 부모나 주변 어른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부모들 자신이 국어에 대하여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아이들도 자연 국어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된다.국어 성적이 좋을 리가 없다.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영어 사전을 안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면 무슨 뚱단지같은 말이냐며 웃는다.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적어도 두세 권 정도의 영어 사전을 소비(?)한 터에 영어 사전을 갖고 있냐는 질문이 마냥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모양이다.나는 이번에 국어 사전을 갖고 있느냐고 학생들에게 묻는다.그러면 또 다시 우습다는 표정으로 마지 못해 몇 학생들만이 손을 든다.반도 안 되는 숫자이다.그 소수에게 국어 사전을 자주 찾아 보느냐고 물으면 이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영어 사전은 하루에도 몇번씩 찾아 보고 영어 낱말 하나를 잘못 쓰면 큰 일 나는 줄 알면서 정작 자신의 모국어에 대해선 모르는 낱말이 나와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려도 창피해 할 줄 모르는 우리 한국인들,이래선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음을 모르는 사대주의에 푹 찌든 한국인들,어휘 500개로 모든 현상을 표현해 보려는 무지한 한국인들,그들에게 같은 한국인으로서 한 마디하고 싶다.어떤 외국어도 모국어보다 더 잘할 수는 없고 모국어의 귀함을 모르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라고….
1992-04-2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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