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의 묘」에 달린 「민자호」의 항진/「각서파동」 이후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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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0-11-08 00:00
입력 1990-11-08 00:00
분당위기까지 치달았던 민자당의 내분이 가까스로 수습된 현시점에서 정가는 물론 국민의 관심은 「민자호의 순항」 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김영삼 대표가 요구하고 노태우 대통령이 약속한 「대표 중심의 일사불란한 당운영 체제」의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노김간의 약속이 착오없이 이행되고 민자호에 탄 많은 사공들이 두 지도자의 고육지책성 결정에 순순히 뒤따를 것이라는 판단은 아직 이른 것으로 보여진다.
외견상 노 대통령과 김 대표는 당내분의 근인이었던 내각제문제와 당기강 확립문제에 인식을 같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내분 수습이 새로운 문제의 출발이라고 보는 시각은 노 대통령과 민정ㆍ공화계가 「최고의 선」으로 치부했던 내각제를 포기하고 김 대표에게 당운영권을 약속한 것은 당이 깨질 경우 차기 정권 창출은 물론 현정권의 위기까지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 때문이다. 또 김 대표도 당을 깰 경우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리드하는 야권에 복귀하거나 정계은퇴외에는 별다른 선택의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이같이 「겉다르고 속다른」 합의를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민정ㆍ공화계가 내각제개헌을 완전포기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며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는 상태로 알려져 있고 민주계 일각에서도 당기강 확립의 불확실한 전망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합당 10개월 동안 민자당의 인기도가 한번도 상승국면에 접어든 적이 없고 계속 하종가 수준에서 맴돌았던 현실정치 상황에서 볼 때 당내 3계파는 적어도 내년초까지는 새로 태어난 민자당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여진다. 파행국회,산적한 정치현안,민생문제 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민자호를 좌초 정도가 아니라 아예 침몰시켜버릴 것이라는 점을 사공들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자당은 이 기간중 「당헌개정」 「전당대회를 통한 경쟁」 「계파간 상호비방」이라는 극약처방보다는 서로를 다독거리는 수준에서 대표중심체제 운영을실험해나갈 것으로 여겨진다.
노 대통령이 6일 청와대회동에서 『김 대표가 중심이 돼서 당을 운영해달라』면서 『대표의 위상을 훼손하거나 음해할 경우 대통령 자신에게 하는 것으로 간주해 단호히 용서치 않겠다』고 말한 대목이나 김 대표가 『제도보다는 운영의 묘가 중요하다』고 한 대목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노 대통령도 자기 자식을 먼저 나무람으로써 김 대표의 「당기강 칼날」에서 비켜서도록 유도했고 김 대표도 분당을 결심하지 않는 한 더이상 다른 계파들을 자극,적대감을 갖도록 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 대표는 대표 중심의 일사불란한 당기강 확립의 승패가 오로지 노 대통령과 자신의 신뢰관계가 어느 정도인가를 각 계파 의원들이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김 대표는 노 대통령이 심정적으로는 내각제 포기나 부분적 당권이양에 동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실상황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안 들어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분석,향후 자신의 입지도 현실상황의 토대 위에서 넓혀나갈 속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노대통령이 어쩔 수 없는 현실상황에서 김 대표에게 당운영 책임을 지우는 한 민정계는 김 대표에게 도전보다는 협조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가에서는 김 대표 당권행사의 첫 징후로 정순덕 사무총장의 기용을 꼽고 있다. 김 대표가 지난 1일 거제도 생가를 방문했을 때 『3공과 5공이 나를 박해해 거제도에 도로포장도 안됐으나 2년 전 정 의원이 민정당 경남도 당위원장 시절 예산을 확보해 포장을 시작했다』고 말했고 정 총장이 김 대표의 통영중학 후배인 데다 꾸준한 교분을 유지해왔던 관계로 천거했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지구당 분파행동은 용서치 않겠다』 『사조직은 절대 없어져야 한다』는 당무복귀에 즈음한 김 대표의 발언도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단죄용 칼날」이라기보다는 「엄포용 칼날」일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김 대표나 민주계가 자신들의 고사작전의 진원지로 생각하고 있는 박철언 의원 중심의 월계수회나 세대교체를 대비하고 있는 이종찬 의원 등의 전국조직과 자신의 민주산악회 등에 칼날을 댈 경우얻는 것보다는 잃을 것이 많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들 조직이 스스로 활동을 정지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계 의원들의 분당주장의 핵심요인인 지구당 분파행동에 대해서도 철저한 당무감사활동은 벌이되 즉각적인 강력조치보다는 「스스로 활동을 포기하게 하는 여건조성」→「각 계파 보스들의 설득」→「경고」→「출당 등 제재조치」의 결코 무리하지 않는 단계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민자당은 내각제문제ㆍ향후 대권구도에 대한 극단적인 시각차에서 비롯된 당내분을 장기적인 「한약처방」보다는 내각제 포기와 당기강 확립이라는 단기적인 「신약처방」으로 봉합한 셈이다.
상처가 아물지 않는 한 3계파간의 갈등은 여전히 민자당의 풀리지 않는 숙제일 것이 분명하며 약효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김 대표 중심의 당기강 확립이 당의 역학구조를 뒤바꿔놓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민자호의 조심스런 항해 도중에도 3계파는 자신들의 명분축적을 위해 보안법ㆍ안기부법 개정 등 「민주개혁조치」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책노선 대결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김경홍 기자>
1990-11-0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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