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건 국가건 일단 자만심을 갖기 시작하면 위태로워지게 마련. 이웃을 불안하게 하고 심하면 자신의 묘혈을 파기도 한다. 우리의 이웃 일본이 그런 자만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긴다. 그동안 마음속에 숨겨오던 오만무례한 말들을 이웃들에게 거침없이 내뱉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이니 이제 못할 말 못할 짓이 무엇인가 하는 자세로 바뀌고 있는 인상이다. ◆미국과의 무력전쟁에서는 졌으나 그다음 45년간의 경제ㆍ무역ㆍ기술ㆍ금융전쟁에서는 이겼다. 미국에 대해 이제는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국수주의경향작가이자 정치인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가운데 요즈음 일본지식인 사이에서는 「팩스ㆍ자포니카」(일본의 세계경제지배시대)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경제대국에 걸맞는 군사력을 갖춘 군사대국화를 지향하는 발언도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을 방문했던 중국 인민일보의 전주일특파원 손동민씨는 일본의 그런 분위기를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는경제적 성공을 기초로 하는 「자신과잉」 상태로 편집적 민족주의 색채를 띄운 「신일본주의」 사상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사회생활상의 배외의식이 강하고 슈미트 전서독수상의 표현처럼 친구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으며 특히 아시아에 대해선 마음을 닫고 있다』 ◆이런 일본은 같은 패전국으로 경제기적을 이룩했으면서도 일본과는 다른 서독과 흔히 비교된다. 서독은 전후 나치스에 대한 안팎의 철저한 청산이 있었으나 일본에서 일제 군국주의 잔당의 청산은 커녕 그 정신이 애국주의로 잠복 계승되었기 때문이란 것. ◆허술했던 미국의 실책이었다고나 할까. 이제 그 보상을 미국은 물론 한국과 아시아 각국이 해야할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일본자신이 가장 큰 희생을 치를 수도 있다. 『일본의 신일본주의가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장차 일본은 또 한차례의 잘못된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인민일보의 경고다.
1990-05-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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