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김병희(33·YES24) 최문희(30·씨네21)
수정 2005-03-10 00:00
입력 2005-03-10 00:00
실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산 것보다 버린 것이 훨씬 많았다. 대학 다닌다고 집떠난 지 10년이 넘도록 기숙사와 하숙집, 자취방을 돌아다니며 사들인 잡다한 살림살이와 옷가지, 읽지도 않은 책들을 죄받을 만큼 많이 버리고서도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아 있다.
혼자 살아도 번듯하게 해먹어 보겠다며 마련한 각양각색의 플라스틱 용기들과 특이한 용도의 요리 기구들, 아침을 거르지 않겠다며 인터넷으로 충동구매했던 생식 한 상자,‘궁극의 사전’이라는 외판원의 말에 넘어가 구입했던 18만원짜리 랜덤하우스 판 영어 사전, 사놓고 한 번밖에 타질 않은 아이스하키 스케이트….
반대로,‘결혼’이란 많은 것들을 오래도록 남기는 데 관심이 많은 행사인 듯하다. 예식과 예물, 축의금과 화환이 오간다. 신부 측에서 예물을 보내오면 신랑 측에서 다시 비슷한 것들을 보내고, 내가 보냈던 축의금은 몇 개의 봉투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 결혼식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증거들은 결국 결혼식 앨범이나 방명록에 담겨 신혼 살림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뒤집어 쓸 것이다.
받은 만큼 갚는다는 불변의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며 상호부조의 계모임으로는 썩 훌륭한 구조이긴 하다.
하지만 나와 내 약혼녀가 감행한 일생일대의 선택에 비해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모른다.
이제 며칠 후면 결혼식이다. 거듭 축하를 받고,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됐음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도록 선포하고서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올 것이다. 이제까지 화려했든 그렇지 않았든 독신 생활을 접는 것이다. 둘이 살고 있는 그곳이 내 집이 될 것이다.
신혼의 증거? 아마 결혼식 앨범에 신혼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덧붙을 테고, 한도액까지 확실히 가득 찰 신용카드는 할부가 끝날 때까지 우리의 결혼식을 기억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비롯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알릴 수 있는 확실한 신혼의 증거, 아니 증인 하나가 아침이나 저녁이나 내내 함께 있을 것이다.
2005-03-10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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