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고전연극 톡톡튀는 재해석 눈길
수정 2010-06-11 00:50
입력 2010-06-11 00:00
가령 그루쉐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대목에서는 반짝이 목도리를 두른 남자 배우가 느끼한 트로트 버전으로 사랑 노래를 불러주고, 그루쉐를 구박하는 올케는 오이팩에 선캡을 두른 대한민국 아줌마 패션으로 등장한다.
브레히트의 트레이드 마크인 서사극적인 전통은 유지했다. 장면 전환 때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무대를 교체하면서 시점과 공간을 일러 주고, 그루쉐의 복잡한 심리도 남녀배우 1명씩 번갈아 나와 관객에게 설명한다. 특히 연극 초반에 300만원짜리 자전거를 낡았다면서 버린 아이와 이를 주워다 잘 고쳐 쓴 아이 간의 싸움이 나오는데, 이것 자체가 백묵원 얘기가 연극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주는 서사극적 전통을 상징하는 장치다. 가벼운 접근을 강조해선지 극 초반은 다소 수선스럽다. (02)3675-3677.
2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4관에 오르는 ‘비계덩어리’(김윤주 연출, 극단 수 제작)는 창녀의 큰 젖가슴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다. 정상적인 여성에게 젖가슴은 따듯한 모성의 상징이지만, 애를 낳지 않는 창녀에게 그것은 아무런 쓸모없이 달려 있는 살덩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런 비하의 태도 뒤에는 물론 그 가슴을 차지하고자 하는 사내들의 욕정이 숨겨져 있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간 보불전쟁을 배경으로 한 모파상의 원작 소설을 한국적으로 옮겼으나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유지됐다. 젊은 창녀 수향을 중심으로 막걸리 장사꾼 이춘삼은 속물 부르주아를, 보수언론사 부장인 배 부장은 가식적 애국주의를, 열혈 민주투사 오병구는 위선적 도덕주의를, 하나님의 뜻을 여기저기 척척 잘도 갖다 붙이는 수녀는 종교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번안 작업이 꽤 수준 높지만 한국적으로 100% 깔끔하게 녹아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원작의 계급적 캐릭터나, 전시 상황에서 창녀 하나 덮치는 일에도 창녀의 허락을 구하는 프로이센 장교 행태 같은 것이 한국적으로 변용되기 쉽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럼에도 이질감이 그리 드러나지 않는 것은 속물적 부르주아 이춘삼 부부의 능청맞고도 코믹한 연기가 잘 배어 들었기 때문이다. (02) 889-3561~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0-06-1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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