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캐스팅 뮤지컬 ‘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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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린 기자
수정 2008-01-26 00:00
입력 2008-01-26 00:00

현실과 꿈 오가는 레퍼토리 함축적 메시지 전달 아쉬워

“찰리 채플린 이후 이런 위대한 감독은 없었어.”‘나인’(3월2일까지·서울 LG아트센터)의 주인공 귀도 콘티니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명영화 감독 귀도는 아파트 층수마다 애인이 있는 남자. 막이 오르면 온갖 종류(?)의 여자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든다. 엄마, 정부, 배우, 제작자, 평론가, 창녀…. 여자들의 한마디는 곧 하나의 소음으로 뭉쳐진다.14명의 여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 때 오직 한 여자만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다. 그의 부인 루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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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8과 1/2’에 뿌리를 댄 ‘나인’은 1982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2003년에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주연으로 활약했다. 국내에도 비슷한 캐스팅 공식이 적용됐다.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배우 황정민이 4년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것. 스크린 속 연기력은 무대에서도 흡입력 있게 표출됐다. 명예, 여자, 예술성 모든 것을 욕망하는 바람둥이 감독은 “낼 모레면 마흔이지만 영혼은 아홉살”이라 스스로 노래한다. 무대에는 넘치는 자의식에 갇힌 그의 현재와 과거, 현실과 몽상이 교차된다.

22일 개막 공연에서 황정민의 얼굴은 10분도 안 돼 땀으로 번뜩였다. 그는 상상 속에서 다큐멘터리, 서부극을 만들어내는 장면, 추기경과 상담하는 장면에서는 1인2역을 오가며 특유의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애드리브 같은 대사 처리는 영화에 더 가깝게 느껴졌고 노래에는 힘이 담겼지만 능숙함이 떨어져 극 안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했다.

육체파 정부 칼라역의 정선아의 농염한 연기와 가창력은 눈에 띄는 부분. 커튼 하나에 의지해 공중에서 내려왔다 다시 퇴장하는 장면은 아슬아슬한 만큼 시선을 끌었다. 루이자역의 김선영은 남편에게 실망과 분노를 터뜨리는 마지막 ‘Be on your own’에서야 힘을 받았다.

‘나인’은 기존 대형 뮤지컬처럼 익숙한 레퍼토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낯설다. 극은 현실과 꿈을 오간다는 점에서 매혹적이지만, 인물 사이의 미묘하고 깊은 심리와 작품이 함축한 메시지가 짜릿하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난해하다.



“현재를 바꾸면 미래도 바꿀 수 있다.” 황정민이 ‘나인’프로그램 책자에 남긴 멘트다.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에서 그가 되뇌이는 말이다. 극의 결말, 아홉살 귀도는 총을 머리에 갖다대는 어른 귀도의 손을 내리고 지휘봉을 쥐어준다. 그리고 노래한다.“어른이 되길….”사랑도 재능도 확신도 잃은 감독. 그에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서 현재를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바뀔까. 제작자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8-01-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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