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은빛 물결, 메밀꽃 필 무렵… 제주의 가을에 스며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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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수정 2026-10-01 09:58
입력 2026-10-01 09:58
세줄 요약
  • 제주관광공사, 올가을 ‘제철 제주’ 여행 제안
  • 한라산 단풍·억새길·해안 라이딩 등 테마 구성
  • 당근·감귤·메밀꽃·축제까지 계절 풍경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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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읍 새별오름의 억새물결. 제주관광공사 제공
애월읍 새별오름의 억새물결. 제주관광공사 제공


10월의 제주는 천천히 색을 바꾸고 있다. 초록으로 짙었던 오름은 억새의 은빛으로 물들고, 밭에는 가을의 결실이 차오른다. 돌담 사이 감귤은 주황빛으로 익어가고, 바람은 한결 서늘해진다.

가을은 제주를 가장 천천히 만날 수 있는 계절이다. 산을 오르고,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달리고, 마을의 골목을 걷고, 숲에 잠시 머무는 동안 여름에는 보이지 않던 제주의 표정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올가을 ‘지금이 가장 좋은, 제철 제주’를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트레킹과 라이딩, 캠핑부터 제철 먹거리와 마을 여행, 웰니스, 문화예술, 가을꽃과 섬·바다까지 제주의 가을을 일곱 가지 테마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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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의 가을. 제주관광공사 제공
한라산의 가을. 제주관광공사 제공


# 한라산 단풍부터 억새길까지… 가을은 ‘걷는 계절’가을 제주에서 가장 먼저 떠올릴 곳은 한라산이다. 성판악과 관음사에서 백록담으로 향하는 길, 고도가 높아질수록 풍경은 조금씩 달라진다. 아래쪽에는 붉고 짙은 단풍이 번지고, 정상 가까이에서는 서리가 내려앉은 풍경이 기다린다. 한 산 안에서 서로 다른 계절을 만나는 셈이다.

가볍게 가을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어리목~윗세오름이나 영실~윗세오름이 좋다. 짧은 시간에 한라산의 가을을 만나고 싶다면 어승생악도 선택지다.

산을 오르는 대신 자전거에 올라 제주의 바람을 만나는 방법도 있다. 신창풍차 해안도로에서는 풍차와 차귀도를 바라보며 페달을 밟을 수 있고, 법환~강정 해안도로에서는 범섬을 곁에 두고 서귀포 바다를 달릴 수 있다.

가을밤에는 텐트 한 채를 펼쳐도 좋다. 바다를 곁에 두거나 한라산 숲속에 머물며 여름보다 길어진 밤을 천천히 보내는 것 역시 가을 제주가 주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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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좌읍 당근밭. 제주관광공사 제공
구좌읍 당근밭. 제주관광공사 제공


# 밭에서 식탁까지… 구좌의 가을은 당근으로 익는다가을 제주에서 땅이 내어주는 첫 맛은 당근이다. 제주 대표 당근 산지인 구좌읍에 들어서면 밭마다 초록빛 당근잎이 줄지어 자란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씨를 뿌린 당근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땅속에서 몸을 키우는 시기다.

본격적인 수확은 11월 말부터 시작된다. 늦가을에는 송당리와 평대리 일대 농가에서 직접 당근을 뽑아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밭에서 갓 뽑은 당근을 바라보고, 주스와 케이크로 맛보며 제주 농업의 계절을 조금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

제주의 가을은 술 한 병에도 담긴다. 좁쌀로 술을 빚어온 제주에서는 감귤 등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술이 만들어지고 있다. ‘신례명주’, ‘탐모라’, ‘제주 곶밭’ 등 제주 재료로 빚은 술은 여행의 맛을 한 병에 담아 돌아가기에도 좋다.

제주의 마을도 선선해지면서 비로소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한경면 저지리 저지오름과 곶자왈 사이에 제주현대미술관과 김창열미술관, 방림원, 생각하는정원 등이 자리해 있다. 숲길을 걷다가 미술관에 들르고, 다시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채워진다.

10월에는 표선면 가시리와 남원읍 의귀리로 발길을 옮겨볼 만하다. 말과 함께 살아온 제주의 목축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가시리의 쫄븐갑마장길은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을 지나며 가을 억새와 마주하게 한다. 의귀리에서는 제주마와 목축문화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초지를 거니는 말과 바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제주가 ‘말의 섬’이었던 시간을 느낄 수 있다.

11월의 신례리는 감귤빛으로 물든다. 돌담길을 따라 익어가는 감귤을 바라보고 이승악오름의 삼나무 숲을 걷다 보면 늦가을 제주가 한층 가까워진다.

#소란이 잦아든 숲에서, 잠시 나를 내려놓다가을 숲에서는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남원읍 물영아리오름은 그 느린 걸음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목장을 지나 삼나무 숲길을 오르면 정상의 분화구 습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내린 날에는 안개가 낮게 깔리고, 맑은 날에는 습지 위로 가을 하늘이 내려앉는다.

동백동산습지와 상효원, 생각하는정원도 숲과 정원에 머물며 잠시 호흡을 고르기 좋은 곳이다.

가을 제주를 자연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아쉽다. 올해 제주에서는 제5회 제주비엔날레가 11월 15일까지 이어진다.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을 주제로 국내외 21개국 69개 팀이 참여해 제주의 자연과 역사, 신화를 현대미술로 풀어낸다.

가을 축제도 잇따른다. 신산 도채비 빛 축제를 시작으로 탐라문화제, 서귀포 칠십리축제, 제주마축제, 제주야페스타 등이 이어진다. 자연과 역사, 예술과 지역의 이야기가 한 계절 안에서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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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리 억새군락지. 제주관광공사 제공
어음리 억새군락지. 제주관광공사 제공


# 억새가 일렁이고 메밀꽃 필 무렵… 고즈넉한 마을 풍경 속에 스며든다가을 제주를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게 하는 장면은 어쩌면 꽃보다 ‘바람’일지 모른다. 애월읍 어음리 일대 들판에서는 억새가 바람을 따라 은빛 물결을 만든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절정을 이루는 억새는 해가 기울 무렵이면 햇빛을 머금고 더욱 반짝인다.

조천읍 와흘리에서는 메밀꽃이 가을을 하얗게 채운다. 돌담과 오솔길 사이로 피어난 메밀꽃을 따라 걷다 보면 유명 관광지를 찾는 여행과는 또 다른 제주를 만날 수 있다.

가을꽃은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대신 바람에 흔들리고, 마을 풍경 속에 조용히 스며든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오는 19일까지 제주에서 촬영한 가을 문화·축제 사진을 등록하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제공하는 ‘제주 가을 사진 이벤트’도 진행한다”며 “가을 제주 여행은 ‘어디를 많이 봤느냐’보다 ‘얼마나 천천히 걸었느냐’에 가까운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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