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정계비의 토문은 토문강”
조태성 기자
수정 2005-08-04 07:46
입력 2005-08-04 00:00
백두산 정계비는 조선 숙종 38년(1712) 조선과 청 양국이 국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두산 천지 아래 세운 것으로, 그동안 비문 해석을 두고 한·중간에 논란이 일었다. 쟁점은 ‘서쪽으로는 압록, 동쪽으로는 토문을 경계로 삼는다.(西爲鴨綠 東爲土門)’는 구절. 이 ‘토문’을 두고 중국과 한국은 각각 두만강과 토문강이라는 상반된 해석을 내놨다.
‘토문’이 두만강이면 간도는 중국땅, 토문강이면 우리 땅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 따라서 어느 쪽도 쉽게 주장을 굽히지 못했다. 그러나 일제가 남만주 철도 부설권을 얻기 위해 1909년 간도를 중국에 넘긴 뒤,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정계비를 철거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토문’이 토문강을 의미한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는 상태다. 다만 정계비 터가 중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북한측 영토에 있다 보니 남측은 이를 실제 확인해볼 방법이 없었는데, 이번에 남북 공동조사의 형태로 이같은 사실을 처음으로 실측할 수 있었다.
재단측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정계비 서쪽 아래는 압록강 발원지다. 반면 정계비 동쪽을 보면 바로 아래쪽은 토문강의 발원지이고 두만강 발원지는 멀리 보이는 봉우리(대연지봉) 너머에 있다. 동서 양쪽의 국경이 서로 맞닿는 지점에 정계비를 세웠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토문’은 두만강이 아니라 토문강이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외에도 이번 공동조사에서 황해도의 안악3호분, 평양 인근의 태성리3호분 등의 고구려시대 고분이 처음 남측 학자들에게 공개됐다. 또 실측 결과 널리 알려진 강서소묘의 도면이 사실과 다르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재단측은 이번 공동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과 공동학술대회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 kr
2005-08-04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