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딛고 재즈 하모니카 앨범 낸 전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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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1-12 00:00
입력 2004-11-12 00:00
국내 대표적인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31)의 데뷔 앨범을 듣는 것은 두 가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그는 생후 보름 만에 찾아온 열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귀로 음악을 배워온 그가 이토록 유려한 연주 솜씨를 뽐낸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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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덕
전제덕 전제덕
그의 입술이 빚어내는 하모니카 소리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밝고 경쾌하다. 게다가 그 세련됨은 여느 외국 음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하모니카는 청승맞다.’는 고정관념을 없애려는 데 신경을 가장 많이 썼죠. 느리게 하면 동요 같고 빠르게 하면 ‘뽕짝’이라는 생각이 많잖아요.” 그의 하모니카가 드럼, 퍼커션 등과 어우러져 펑키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우리 젊은 날’로 앨범 첫머리를 장식한 것도 그 이유다.

재즈에 바탕둔 다양한 장르의 곡

이번 앨범에는 재즈에 바탕을 두면서 라틴, 보사노바, 레게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담았다. 첫 걸음이니만큼 대중들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해바라기의 ‘시들은 꽃’, 김광진의 ‘편지’ 등 익숙한 노래들을 새로운 감각으로 살려냈고 ‘가을빛 저무는 날’에서 가수 BMK의 보컬과 대화하듯 이어지는 하모니카 연주도 손톱만큼의 낯섦 없이 감미롭게 감긴다.

그가 작곡한 타이틀곡 ‘바람’은 앨범의 백미. 신명나는 라틴 리듬이 5분 넘게 이어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속주, 화려한 기교, 테크닉은 감탄을 자아낼 뿐이다. 마지막 트랙 ‘나의 하모니카’에서는 “서둔동 가수(그가 사는 곳이 수원 서둔동이다.)”로 통하는 그의 썩 괜찮은 노래도 감상할 수 있다.“그리 졸린 음반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장르도 다양하고 중간중간 어렵지만 들을 만해요.(웃음)”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에서 장구채를 잡았던 그가 하모니카와 연을 맺은 건 8년 전,22살 때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스웨덴 출신의 하모니카 대가 투츠 틸레망스의 연주에 ‘필’이 꽂혔다.“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연주를 들으며 빠져들었죠. 하모니카가 보조적인 악기로만 인식돼 있잖아요. 그의 연주를 들으며 하모니카도 저렇게 훌륭한 메인 악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후 투츠의 음반을 모조리 사서 들으며 독학으로 하모니카를 배웠고 현재 손꼽히는 연주자로 올라섰다. 그가 쏟아 부은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조성모 등 유명가수 음반·영화 OST 참여

대중에겐 생소한 그의 이름 석 자는 이미 대중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조성모, 박상민, 조규찬, 이적, 김정민, 말로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와 영화 ‘똥개’‘튜브’ OST에서 들을 수 있는 하모니카 소리는 다 그의 것이다. 그는 재즈의 틀 안에서 우리 전통음악을 녹여내는 작업을 “먼 미래에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악과 양악 두 분야에서 수준급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 멀었다고 겸손해한다.“음악적으로 ‘꼴깝떠네.’하는 생각 안 할 때쯤 하고 싶어요.”장애를 가진 그가 얼마나 많은 편견에 부딪히고 있는지가 솔직한 말투에서 엿보인다.

“관악기 가운데 숨을 들이마시면서 하는 악기는 하모니카뿐이죠. 그래서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낼 수 있어요.” 그가 말하는 하모니카의 매력이다. 그 매력 속에 기꺼이 빠져들어 보자. 분명 하모니카를 재발견하게 해준 그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2004-11-12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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