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슈가/고은주 지음
수정 2004-08-19 00:00
입력 2004-08-19 00:00
표제작에서 작가의 의도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기혼이거나 결혼을 눈앞에 둔 남녀.커피에 녹여 먹는 막대사탕(칵테일 슈가)이 남편 혹은 아내 몰래 감쪽같이 외도를 즐기는 남녀 손에 이리저리 옮겨다닌다.‘그 남자’가 불륜현장에서 받은 사탕을 아내에게,현모양처인 줄 믿었던 그 아내가 다시 남편 아닌 남자에게 건네는 일탈의 과정에서 위선적 결혼제도가 앙상한 뼈대로 물러앉는다.
오랫동안 은밀한 관계를 가져온 여자가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언하자 남자가 조롱하듯 뱉는다.“결혼은 겉으로만 견고한 제도일 뿐이야.오히려 그 외적인 견고함 속에서 내적인 자유의지는 더욱 강렬해지지.제도가 너의 의지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스카프’‘넥타이’ 등 이름을 갖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익명성,돌고 돌던 사탕이 맨처음 건넨 여자의 손에 되돌아오는 대목 등으로 작가는 풍자정신을 절묘하게 은유해냈다.
결혼을 희화화하는 작업은 ‘너의 목소리’에서도 이어진다.남편 애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분노가 아닌 기묘한 욕망에 빠져드는 여자의 이야기다.현란한 기교없이 정교한 문장을 구사하기로 정평난 작가는 현대문명의 그림자 쪽으로도 진지한 시선을 보냈다.‘저기 내가 걸어간다’편에서는 컴퓨터통신이 “획일성의 원형감옥 안에서만 떠다니는 닫힌 자유”임을 환기시킨다.
지방 방송사 아나운서 이력이 있는 작가는 1995년 단편 ‘떠오르는 섬’으로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해 등단했다.제23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장편 ‘아름다운 여름’ 이후 ‘여자의 계절’‘현기증’‘유리바다’ 등을 내놓았다.9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4-08-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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