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림 첫 소설집 `유령’
수정 2004-02-06 00:00
입력 2004-02-06 00:00
진정성이 응집된 곳은 ‘기억’이다.표제작 등 8편의 단편 속 주인공들은 문득 마주친 현실의 한 장면에서 어두운 과거를 떠올리며 애써 잊으려 눌러두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의 강’을 건너 간다.그러나 그 수렁에서 헤어나올 방법은 잘 보이지 않아 여전히 힘겹다.
여자친구 인숙이 어머니에게 닥칠 죽음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다가 낯선 여자와 살을 섞은 기억과 그로 인한 죄책감을 떠올리는 진형(표제작),송별식 장소로 정한 ‘환희’라는 단란주점 상호를 듣고 죽은 애인 은주와 보낸 하룻밤을 기억하며,죽음 앞의 그녀를 막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주인공 영훈(‘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새벽 새’) 등은 작가의 시선이 잘 투영된 인물들이다.이런 상황은 ‘귀가’의 주인공 ‘나’도 마찬가지.퇴근 버스에서 불구의 아들과 탄 한 여인을 보고 ‘나’는 불구인 형과 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 어머니로 인해 느꼈던 질투심에 사로 잡힌 지난 날에 시달린다.
이처럼 작품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주인공에게 ‘구원의 빛’이 잘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작가는 ‘과거의 악몽’에서 좌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비록 악몽에서 벗어날 길은 요원하지만 그 현실 자체를 받아들인다.기억에 묻혀 있는 끔찍함과 그로 인한 현재의 고통을 모두 운명으로 긍정하면서 온 몸으로 끌어안고 간다.그것은 탈주의 가능성에 대한 암시로 다가온다. 작가 한씨의 아버지는 중진작가 한승원씨고 여동생 한강도 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소설가로 활동 중이어서 문단에서 ‘작가 집안’으로 유명하다.
이종수기자˝
2004-02-0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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