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식사의 정치/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수정 2018-04-25 22:26
입력 2018-04-25 22:24
2015년 10월 영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주석에게 엘리자베스 여왕이 환영 만찬을 베풀었는데, 이날 제공된 한 병에 300만원짜리 1989년산 프랑스 보르도산 와인이 구설에 올랐다. 일각에서 “톈안먼 사건이 발생한 같은 해의 와인을 내놓음으로써 영국이 중국의 인권 탄압을 빗댔다”고 빈정거린 것이다. ‘향연에 나오는 것에는 모두 의도(의미)가 있다’는 의전의 철칙을 영국 왕실이 몰랐을 리 없겠지만 음식이나 음료 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주는 일화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18 남북 정상회담의 만찬 메뉴 10가지가 공개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인 신안 가거도산 민어해삼 편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에서 난 쌀로 지은 밥이 메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배려해서는 유년 시절을 보낸 스위스의 가정요리인 ‘뢰스티’(감자를 강판에 갈아 둥글게 부친 요리)를 우리 식으로 바꾼 감자전과 함께 평양 옥류관 냉면도 밥상에 올린다.
북한에 ‘큰 쌀독 열어 놓고 손님 대접한다’는 말이 있는데, 남측의 정성 들인 식사에 김 위원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2018-04-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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