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고향의 의미/손성진 수석논설위원
수정 2013-09-18 00:00
입력 2013-09-18 00:00
20세기 이전 이주가 활발하지 않았을 때는 벼슬 등을 얻어 출향(出鄕)하지 않으면 선조의 묘가 있는 고향을 평생 지키며 살았다. 그러나 6·25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수많은 사람이 북에서 내려와 고향을 잃었다. 북이 고향인 실향민은 300만명이 넘는다. 북한 인구의 4분의1이다. 남한에서 살던 사람들도 먹고살기가 힘들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몰려들었다. 서울의 인구는 1955년에 157만여명이던 게 1965년에 347만여 명, 1975년에 688만여명, 1985년에 963만명으로 급팽창했다. 올림픽을 치렀던 1988년에 1000만명을 돌파한 서울 인구는 그 이후 증가세가 둔화하였다. 서울 시민 10명 중 8명은 고향을 떠나온 사람과 그 자손들이라고 볼 수 있다.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고향은 늘 가고픈 곳이다. 연어가 사력을 다해 모천을 거슬러 올라가듯 명절 때면 귀성 전쟁이 벌어진다. 기차와 버스에 짐짝처럼 실려도 귀향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열 몇 시간씩 차를 운전하고 가야 하는 고통도 감내한다. 오로지 고향의 냄새를 맡고 싶은 본능적 행동이다. 민족 대이동은 올해도 변함없다. 올 추석 연휴 동안 전국의 추정 이동 인원은 지난해보다 4.9% 늘어난 3513만명이다. 이동 인원이므로 귀성객 수는 그 절반쯤으로 보면 된다.
1950년대 이후 상경해서 서울에 자리 잡은 1세대 이주자에게 고향은 뚜렷하다. 그러나 그 자손들의 고향은 어디일까. 당연히 서울로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명절이라도 귀향할 필요가 없다. 도로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태어나 수도권에 사는 30~50대는 1990년에 262만명으로 수도권 전체의 39%였지만, 2010년엔 523만명으로 46%로 급증했다. 몇십 년 후 1세대 상경 이주자들이 대부분 사망하고 거의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만 남는다면 귀성 전쟁도 사라질 게 틀림없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2013-09-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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