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늦은 변명/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수정 2016-08-18 21:21
입력 2016-08-18 20:50
벼랑 끝에 몰리면 사람 밑천 다 털린다. 무더위 기세 꺾일 일이 시간문제다 싶으니 제정신이 돌아온다. 폭염에 뺨 맞고 온 여름내 매미한테 화풀이. 뒤집어씌운 덤터기 말도 못 한다. 낮밤 없는 가마솥더위에 죽기로 덤비던 매미 떼창. 쇠톱 건너가는 목청에 뒷골 따갑다고 저놈, 말매미 참매미 죄다 쓸어안은 벚나무들 도매금으로 원망하며 저놈, 방충망에 달라붙어 새벽 풋잠 깨웠다고 저놈. 저 울음소리 청량하다는 옛글들은 무슨 수로 나왔나, 대체 그 붓끝 어찌 홀렸기에 저놈의 매미.
그랬던 매미 소리, 땡볕 성글어지기 무섭게 썰물처럼 쑥 빠진다. 타박하던 마음은 그새 변덕이다. 울며 불던 그 소리 벌써 아쉬워서.
매미 탓, 염천 탓. 여름 강을 나만 얼레벌레 빈손으로 건넜나. 마음만 저 혼자서 또 바쁘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6-08-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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