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어떤 트라우마/임창용 논설위원

임창용 기자
수정 2015-12-18 01:21
입력 2015-12-17 23:06
아파트 인근 산책로에서 가끔 겪는 상황이다. 우습게 보이겠지만 현실이다. 어릴 때부터 개가 무서웠다. 특별히 물린 기억도 없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어쩌면 개에게 물리긴 했는데 너무 어려 기억이 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트라우마라는 게 본래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과 현재의 비슷한 상황이 겹칠 때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개 주인에게 항의도 몇 번 해 봤다. 목줄 좀 매서 다니라고. 그러면 대개 이렇게 말한다. “우리 개는 절대 안 물어요.” 하긴 산책하다 물린 적은 없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무섭다. 걸어가는데 별안간 달려들 것만 같다. 며칠 전 정말 그런 상황이 닥쳤다. 산책로는 아니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다. 20대 후반쯤 된 젊은이가 목줄 없이 강아지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다섯 걸음쯤 남았을까, 강아지가 갑자기 달려든다. 물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무척 놀라 순간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강아지를 불러들이는 주인의 얼굴에 ‘웬 호들갑이냐?’는 표정이 역력하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2015-12-18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