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배차장/이춘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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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2-11 12:32
입력 2009-12-11 12:00
전라북도 신태인(新泰仁)읍은 일제의 산물이다. 호남선 철도가 깔리며 생겼다. 광복 뒤 투자는 적었지만 쌀집산지로 유명했다. 30여년 전엔 인구 3만을 넘기도 했다. 전국최대 고추시장이었다. 그 시절 배차장이라고 불린 신태인터미널은 전주·김제·부안으로 가는, 제법 많은 시외버스 노선이 있었다.

특히 신태인배차장은 기차가 연결되지 않는 전주로 학생들이 통학할 수 있게 했다. 신태인역과 함께 외부와 연결되는 양대 통로였다. 대도시로 운행되는 고속버스 노선은 없지만 번듯한 2층 건물의 매표소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신태인 5일장이 서는 날은 인파로 넘쳐났다. 애인을 군대에 보내는 젊은 여성들이 눈물깨나 뿌렸던 곳이다.



인구가 5분의1까지 시나브로 줄며 신태인배차장도 퇴락했다. 시외버스는 소수만 남았다. 고장난 자동발권기는 분위기를 을씨년스럽게 한다. 주변상권 모습도 1970년대에 멈추어 서 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 촬영세트로 활용된다. 신태인배차장에 서 보면 삶이 꿈같다. 그 많던 사람도, 버스도 어디로 갔나.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09-12-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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