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포럼(ARF) 회의에 참석했다. 흔히 ARF 외교장관회의로 알려진 이 회의에서 올해에도 북한 핵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가 중점 논의됐고,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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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 주아세안 대표부 대사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포함한 각국 외교장관들은 ARF 의장 성명에서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의무 준수를 촉구했다. 2010년 이후 ARF 회의 최대 의제인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해역 내에서 진행되는 매립 공사에 대한 우려와 함께 평화적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2013년 ARF 회의 이래로 3년 연속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가 도출됐다. 북한 핵 문제는 한반도만이 아닌, 동아시아 및 국제사회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다. 이번 ARF 의장 성명이 북한을 적시해 비핵화 의무 준수를 촉구한 것은 국제사회의 분명한 입장을 북한 측에 다시금 확인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대북 비핵화 압박이 북한의 즉각적인 핵개발 포기나 중단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도 언제까지고 일관된 국제 여론에 눈과 귀를 닫고 제 방식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이번 회의 후 북한이 볼멘소리를 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는 외세 의견에 태연한 척 허세로 일관하는 북한도 아세안의 공식 의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다.
이번 ARF 회의의 또 다른 중요한 이슈가 남중국해 문제다. 특히 올 초 중국의 인공섬 매립 공사로 논란이 가열된 사안이다.
올 4월에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역내 정상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는데, 올해 ARF 의장 성명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우려가 표시됐다. 한편 중·아세안 간에 논의 중인 남중국해행동규약(CoC)의 조속한 체결 필요성도 강조됐다.
ARF 의장 성명에서는 또한 ARF 회의 직전 중국 톈진에서 개최된 남중국해 관련 중·아세안 고위급회의 결과를 두고 환영하는 내용이 눈에 띄는데, 톈진 회의에서 정말 실질적 진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세안 내외 국가들의 평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의장 성명의 ‘환영’ 문구는 희망의 메시지 차원에서 포함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