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태백산 일본잎갈나무 벌목 계획 철회하라
수정 2016-08-26 18:17
입력 2016-08-26 18:06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산들은 어딜 가나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본격적인 산림녹화 사업을 벌인 것도 민둥산으로 인한 홍수와 가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태백산의 이 낙엽송들도 녹화 사업이 한창이던 1960~70년대 심어진 나무들이다.
그 이후 이 일본잎갈나무는 거목으로 컸고, 태백산국립공원 내 수종의 11.7%를 차지할 정도로 아름드리 울창한 숲을 이뤘다. 그러니 국립공원 측이 느닷없이 이 나무들을 벌목하겠다고 나선 것은 누가 봐도 얼토당토않은 처사로 여길 만하다.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국립공원 내 외래종 나무를 제거하고 토종으로 대체한다”는 국립공원 관리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하니 더더욱 황당하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토양과 기후에 잘 적응한 나무라면 이미 한국산이나 다름없다.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이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을 벌목한다면 이 땅의 수많은 다른 나무와 꽃들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국립공원에는 일본산 나무가 있으면 안 된다는 국립공원 측의 발상은 한심하다 못해 유치하기까지 하다. 수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후진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깊은 산속의 나무마저 국적을 따져 마음에 들지 않는 일본산 나무는 베자는 공무원들의 발상이 무섭다”, “엉뚱한 짓 하는 공무원들, 그래서 욕먹는 거다” 등 네티즌들의 비난이 줄을 잇는 것도 그래서다. 이번 기회에 공무원들은 알량한 애국심에 바탕을 둔 산림 정책이 오히려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숲 생태계 훼손이 문제다. 국립수목원이나 환경단체 등에서는 거목들을 인위적으로 베어 내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산 곳곳에 장비들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산림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민족의 영산(靈山)’인 태백산을 잘 가꾸고 보호하려면 지금 나무들을 그대로 두는 것이 최선이다. 나랏돈 45억원을 들여 엉뚱한 일 벌이지 말고 벌목 계획부터 접어라.
2016-08-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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