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단체 정치후원금 부활 옳지 않다
수정 2011-03-23 00:44
입력 2011-03-23 00:00
선관위가 구상하는 지정기탁금 제도는 기업이나 단체가 정당을 지정해서 기탁하되 50%만 해당 정당에 주고, 나머지는 국고보조금 배분 방식으로 각 정당에 나눠주는 방안이다. 선관위는 정치자금의 편법성과 탈법성을 차단해 공개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하지만 더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게 뻔하다. 미국만 해도 간접 후원을 허용하지만 심심찮게 논란을 빚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2004년 폐지된 정당 후원회를 부활하는 방안도 폐습 되살리기에 불과하다. 두 의견은 정치 개혁의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는 개악이 될 뿐이다.
선관위는 기탁금 상한을 1억 5000만원으로 설정했다. 71개 계열사를 거느린 삼성은 106억 5000만원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기업들에 합법적인 로비의 길을 열어주는 것과 다름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아예 준조세를 공식화해서 돈을 내라고 압박당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은 금권정치를 양성화하고, 정경 유착의 부패 사슬을 다시 제도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사회 의결을 거쳐 후원금을 내도록 하는 완충 장치를 함께 내놨지만 이 역시 오너 1인의 지배를 받는 기업의 현실을 감안하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데 불과하다.
정치권이 기업과 단체들에 휘둘리면 국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차라리 국민 세금으로 정치권을 먹여살리는 게 더 생산적이다. 여야 정당들은 현재의 국고 보조금에 만족하고 기업이나 단체의 돈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신 청목회 사건 이후 국회의원들은 여야 없이 후원금이 끊겼다. 그들이 투명한 돈으로 깨끗한 정치를 펼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후원금의 대가성을 엄격히 해석해서 면책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소액 다수의 정신을 살릴 수 있다.
2011-03-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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