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다시 찾은 여수의 꿈
수정 2007-11-29 00:00
입력 2007-11-29 00:00
런던박람회에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이웃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1900년까지 거의 10년 간격으로 다섯 번의 박람회를 연거푸 개최했다. 이를 통해 파리는 세계박람회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도 박람회의 산물이었다. 매년 1억 50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며 프랑스를 관광대국으로 만들었다. 프랑스는 일곱 번의 박람회를 더 개최했다. 오늘날 프랑스가 예술과 패션, 문화의 국가로 손꼽히는 것도 지속적인 박람회 개최를 통해 세계인에게 선보인 패션과 예술 산업 덕분이다.
미국이 처음으로 세계박람회를 개최한 곳은 1886년 필라델피아다. 미국의 데뷔 무대는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한발 늦었지만 전화기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보스턴대에서 음성생리학을 가르치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진동판에 전자석을 붙여 소리를 전류로 바꾸는 장치를 개발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필라델피아에서 박람회가 열리자 여기에 자신의 발명품을 출품했다. 이곳에서 우연히 브라질 대통령의 눈에 띈 벨의 전화기는 순식간에 대회장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통신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일본의 세계박람회 유치는 서구 국가들보다 100여년이 뒤진다.1970년 오사카에서 연인원 6000만명이 관람한 역대 최대규모의 박람회를 개최했다. 최첨단 전자제품들을 집중적으로 전시했다. 오사카 박람회는 소니와 파나소닉 등 전자업체들을 세계 초일류 기업 명단에 올리며 패전국의 이미지를 벗는 계기가 되었다. 이밖에도 캐나다의 밴쿠버와 스페인의 세비야 등도 세계박람회 개최를 통해 선진국 선진도시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세계박람회는 인류 신문명의 경연장이자 개최국 국가발전의 도약대다. 그제 새벽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됐다. 험악한 정권싸움에 몰입했던 정치인들도 한목소리로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소식을 환영했다.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이 그랬던 것처럼 국력을 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구심점을 찾았다. 여수 세계박람회는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과 역동성의 용광로가 될 것이다. 그 안에 온갖 갈등과 분열을 녹여 창조적 에너지로 바꿔내야 한다.
2012년 5월12일 여수에 세계인들이 다시 모인다. 여수박람회 주제는 환경과 바다다. 한국은 그들과 함께 거기에 지구의 새로운 미래를 선보일 것이다.4년반 남았다. 모두가 하나 되어 다시 뛰자. 해양대국 여수의 꿈을 위해.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2007-11-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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