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거미들과 귀곡산장
수정 2018-08-21 23:54
입력 2018-08-21 22:38
제일 흔하게 만나는 건 호랑거미와 무당거미들이다. 그들은 고추밭 사이에 그물을 치고는 모기나 파리뿐만 아니라 때론 메뚜기를, 날개 떨어진 나비도, 길 잃은 말벌도 거미줄로 칭칭 감아 놓는다. 요즘 제일 흔한 것이 매미인데 걸린 건 본 적이 없다. 너무 시끄러워 그러려나. 구석진 곳에는 얼기설기 먼지처럼 불규칙적인 공간 만드는 풀거미, 유령거미들도 보인다. 작은 거미들이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슬쩍 사라지고 만다. 거미줄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많은데 잡초를 매다 보면 달아나기 바쁜 늑대거미들, 예쁜 꽃 속에 숨어 있다가 다가오는 벌레들을 잡아먹는 꽃거미들이 그렇다. 괴기하기도 하고 때론 화려한 그들을 발견하는 것, 텃밭과 화단을 돌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함께 사는 고양이들이 잠자리며 나비, 나방에 쥐와 뱀, 새들까지 잡아 오지만 거미 잡아 오는 건 아직 보지 못했다. 시시할 수도 있겠고 만만치 않거나 도망을 잘 치니 그런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여전히 실을 잣고 있을 그들. 언제 끊어지고 망가질지 몰라도 끊임없이 운명의 그물을 짜며 이어 나가니 그 공덕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들이 이 마당의 주인이고 예술가이다.
화가
2018-08-22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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