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재 세상 추임새] 다시 최명길을 생각한다
수정 2011-06-09 00:50
입력 2011-06-09 00:00
최명길은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 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 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끝내 청과 화친을 이끌어낸다. 뒷날 두 사람은 청나라에서 다 같은 포로 신세로 조우하여 나라를 위한 마음은 같았으나 방법이 서로 달랐을 뿐이라고 화해한다.
요즈음 우리사회에 과거에 보지 못했던 국가적 과제와 정책 현안에 대한 갖가지 갈등과 혼란이 증폭되고 표출되어 어지럽기 짝이 없다. 세종시와 4대강 문제는 이미 정부정책으로 확정되어 시행되고 있지만, 초과이익공유제를 둘러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갈등, 신공항 건설 및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둘러싼 지역 간 갈등, 반값 등록금·무상 급식·부자 감세 철회 등 친서민 정책에 대한 여야·당내 갈등,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으로 고착된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보수와 진보진영의 갈등, 이동통신 요금 및 기름값 인하 등과 관련한 정부와 기업 간의 갈등 등 무엇이 정부정책의 목표와 방향인지, 어떤 정책방향이 옳고 바람직한지 쉽게 가늠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어떤 정부정책이 만고불변의 진리이거나 영원히 추구해야 할 국가적 이념과 가치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정부정책은 국가를 어떤 목적하에 어느 방향으로 조타해 나가야 한다는 분명한 역사의식과 함께 이 시대 인류가 추구하고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편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정책의 당위성과 방법론에 대한 정책논쟁과 대결이 이뤄져야 한다. 당은 당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자기 입맛, 자기 생각, 자기 이익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반대, 무조건 이념 색깔 덧씌우기, 무조건 변절로 몰아치고 있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이다.
최명길을 이 시 점에서 떠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분과 실리라는 이분적 잣대가 아니라 그의 행동과 주장에는 구국과 역사의 지속이라는 절대적 명제와 치열한 결단이 있었다.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정부정책의 주장과 논의 뒤에 절대적 기준과 판단이 되어야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 대한민국 역사 발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작금의 정책 발상과 추진·논쟁이 국민의 눈에는 오로지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표심 잡기를 위한 포퓰리즘 정책의 극치로 비쳐지고 있다. 도무지 정책의 진성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도, 지금 정부도, 미래 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정자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시대를 생각한다고 한다. 진정한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 준엄한 역사의식과 치열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선거에 흔들리지 않는 정책으로 역사 발전과 국가선진화를 이룩하기를 갈망한다.
CHA의과학대 총장
2011-06-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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