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면 칼럼] 역사지식 없이 역사인식 없다
수정 2013-08-22 00:18
입력 2013-08-22 00:00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가 문화융성이다. 이를 위해 인문학의 중요성을 유독 강조한다. 기업들도 인문경영에 나섰다. 가히 ‘인문학 르네상스’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의 핵심인 역사에 대한 대접이 초라하다. 청소년들은 ‘역사문맹’ 증상까지 보이니 이 무슨 조화인가.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사가 수능 선택으로 남아 있는 한 아무리 역사교육을 강화한들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로 지정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수능 필수가 한국사 교육을 암기식으로 흐르게 해 역사의식을 키우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암기가 악인가. 어떤 학문이든 암기해 놓은 기초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더 넓은 응용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경(經)과 사(史)를 외우는 것이 흠이 아니듯 우리 역사의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잘못일 이유가 없다. 자잘한 지식의 조각들이 다 인문학적 상상력의 모태요 역사인식의 근원이다.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역사인식 지수를 재어 본다면 수능 필수를 가외의 부담으로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회 과목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한국사를 사회탐구 영역에서 떼어내 필수과목으로 하는 선에서 정리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명분이 있는 일이라면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뿌리 내린 역사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런 만큼 잘 가르치고 잘 배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끝없는 역사교과서 정치편향 논란에 학생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른다. ‘정권사관’에 따라 근현대사 교육의 내용이 오락가락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좌·우 편향 논란을 빚고 있는 개정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최종 검정 결과가 곧 나올 예정이다. 또다시 2008년 금성교과서 사태와 같은 ‘사관전쟁’이 재현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 몫이다.
한국사 수능 필수화의 참뜻은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세계인식의 지평을 넓혀 보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사’ 교육은 일국사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사까지 아우르는 ‘역사’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사 수능 필수의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 그 이후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jmkim@seoul.co.kr
2013-08-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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