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정치비평] ‘3대 난치병’ 치유 없이 정치 정상화 없다
수정 2015-02-16 02:11
입력 2015-02-15 17:54
둘째, 힘에만 의존하는 병이다. 권력이란 물리적 강제력을 토대로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권력이 판을 치면 조직 구성원들의 공통 목표보다는 리더의 목표만이 우선시된다. 권력은 리더십이 발휘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아니다. 다시 말해 권력이 없어도 리더십은 발휘될 수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권력을 휘두르는 데는 익숙했지만 설득이 요체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는 미숙했다. 설득보다 힘에만 의존하면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불통과 독선만 남게 된다. 국회 130석을 갖고 있는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도 줄곧 힘에만 의존하는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에 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야당도 설득보다는 걸핏 하면 장외로 뛰쳐나가 농성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몰입했다. 이것이 연이은 대선 패배와 권력을 품지 못하는 불임 정당의 단초가 됐다.
셋째, 포퓰리즘의 병이다. 특히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인기영합적인 선동 정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 최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 ‘증세 없는 복지’ 논쟁의 뿌리는 2012년 대선 당시의 무상 복지 경쟁이다. 박근혜 후보는 비과세·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세출 절감 등의 방법을 통해 ‘국민의 부담을 최소화하며 복지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정부는 2013년 5월 국정 과제 실현에 필요한 약 135조원의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문제는 공약가계부의 틀 자체가 성장을 늦추더라도 복지를 늘리겠다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경제부흥’에는 실질적으로 13조원 정도의 예산이 책정됐고 복지 확대가 핵심인 ‘국민행복’에는 약 100조원이 투입됐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기대한 만큼 살아나지 못하면서 세입은 줄고 세출은 늘어났다. 지난 2년간 세수 결손액이 20조원 가까이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수가 확보된다”, “증세는 배신”이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국민의 80%는 정부가 “증세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 확대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증세냐, 복지 축소냐와 같은 소모적인 정치 논쟁보다는 지속 가능한 복지, 생산적 복지, 유연한 복지와 같이 복지 논쟁의 프레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최근 문재인 대표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야당은 자진 사퇴가 거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라고 설명한다. 의견 수렴을 위해 여론조사는 필요하지만 여론조사로 정치적 결정을 하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이자 대의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행위다. 최근 여야 대표가 참배 정치를 통해 국민 화합을 위한 힘찬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정치의 3대 난치병을 우선적으로 치유해야 한다. 치유의 최고 수단은 타협하고, 협조하고, 합의하는 정치로의 전환이다.
2015-02-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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