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금융위기와 중국의 자신감/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수정 2008-11-08 00:00
입력 2008-11-08 00:00
또 하나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세계 유수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데 힘을 쏟자는 쪽이다. 싼 가격에 세계적인 기업들을 사들여 그들의 경영기법과 각종 기술을 흡수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다. 진정한 강대국으로 가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일 수 있다. 금융위기로 ‘중국 위협론’ 같은 경계심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기업들도 유동성 공급을 절실히 원하는 상황이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이들이 기업 사냥의 적기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회의에서는 주식을 사자는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한다고 한다. 주식값이 얼마만큼 더 떨어질지 모르는 데다 일이 잘못되어 손실이 발생하면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기업을 사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몰라 자신이 없어 못살 것”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실제 “중국이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이후 금융위기에서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진화된 금융상품을 제대로 몰라서 못 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서 중국은 지금 석유 등 자원확보에 우선 골몰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여기저기서 미국발 금융위기에 생존을 걱정하며 움츠리는 상황에서 중국의 처지는 분명 남다르다.
나아가 중국의 식자들은 요즘 다소 흥분해 있다. 이들은 위안화가 달러를 누르고 세계 기축통화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얼마나 먼 훗날에 가능한 일인지를 잘 알지만, 미국 일방의 패권시대가 가고 중국이 다극화의 한 축을 담당할 시대가 오고 있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 지난 10월31일 베이징에서 ‘세계무역기구(WTO)와 중국-베이징 국제 포럼’에서 미국 블랙스톤 그룹의 량진쑹(梁錦松) 중국법인 회장은 “지금 국제 금융시장은 불안하지만 멀리 보면,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편에서는 ‘성장률 8%대’를 거론하며 곧 중국이 망할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 관계자들은 “지금 세계에서 8%대 성장률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면서 “역시 중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 미국 대선도, 중국은 어느 때보다 편안한 자세로 관람했다. 내심은 다를지언정 최소한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1기 정부 출범 때처럼 마음 졸이지는 않았을 터이다. 누가 돼도 중·미 관계에 큰 변화는 없다고 할 정도로 양국관계는 안정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굴기(굴起·일어섬)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안정이 최고라는 일념으로 웅크려온 결과다. 오는 1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전례없는 관심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는 12월, 중국은 감개무량한 ‘중·미수교 공동성명 30주년’을 맞는다. 패권을 추구할 능력도 없었던 당시 ‘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성명에 사인을 했던 중국이다. 자신감에 찬 중국이 언제 미국에 ‘이제 패권을 내놓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들이댈지 모를 일이다.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jj@seoul.co.kr
2008-11-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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