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무너지는 프랑스 중산층/이종수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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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08-09 00:00
입력 2008-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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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국제부 차장
이종수 국제부 차장
‘생활의 발견’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흔히 부닥치는 상황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뜻쯤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특히 외국에서 살다 보면 더 크게 살갗에 와 닿는다.

기자를 포함해서 프랑스에 부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겪는 불편 가운데 하나가 집 문제다. 전세 제도가 없어 조건에 맞는 월세 아파트를 구하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 신청하고 최소한 보름은 지나야 하는 인터넷망 설치는 얼마나 더딘지, 민원 관련 서류는 얼마나 많은지…. 이 까다로운 ‘통과 의례’는 이사를 하면서도 엇비슷하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는 프랑스의 물가도 뼛속 깊이 체험할 수 있었다. 슈퍼에 가 보니 과일·채소 가격이 많이 올랐다. 지난해 복숭아 1㎏ 값이 1.9유로(2960원)였는데 2.2유로(3430원)로 올랐다. 통계를 보니 올해 5월에만 과일과 채소 가격이 평균 5.9% 올랐다. 지하철·버스비도 1.11유로에서 1.14유로로 올랐고, 이미 오른 전기와 가스비도 다음달에 또 5%와 2%가 오른다고 한다.1년동안 17.4% 오른 기름값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집값이다. 한동안 주춤했던 집값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덩달아 월세 인상 폭도 만만치 않다. 집을 구하면서 알게 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물었더니 그는 “10년전이면 10만유로(1억 5610만원)로 14구에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스튜디오(일종의 원룸)밖에 못 산다.”고 설명했다.

유럽연합 통계청 기준으로 프랑스의 5월 물가상승률은 3.7%다. 지난해 한해의 물가상승률이 3.3%이니 1991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언론은 ‘중산층의 몰락’ 기사를 자주 보도한다. 물가 인상으로 서민과 빈곤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보지만, 유가·식량 가격 인상이 주는 충격은 이제 중산층에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은 각양각색이다. 나라마다, 학자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도 다르다. 아예 중산층을 ‘상류 노동자’로 분류하며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프랑스에서도 논자마다 개념이 다르다. 그러나 불평등연구소의 정의를 따르자면 월 수입이 1200유로(192만원)∼1840유로(287만원)인 계층이다. 물론 단순히 수치만 갖고 한국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주35시간이라는 법정 노동시간, 유급휴가 5주, 사회연금제도 등 프랑스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감안해야 한다.

어쨌거나 프랑스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최근 중산층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된 이유가 석유·식량가격 상승에 따른 구매력 저하. 여기에 2년동안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유로 내세운다.

생활조건연구조사센터(CREDOC)에서 중산층 소비전략을 연구하고 있는 로베르 로쉬포르 국장은 “이제 중산층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의 논거는 값싼 ‘메이드 인 차이나’가 몰려들고 인터넷으로 싼 물건을 살 수 있어 중산층의 월급이 오르지 않아도 살 수 있었던 시대가 이제는 인플레로 의미 없어졌다는 것이다. 더구나 석유·식량·집값의 상승은 앞의 두가지와 관련도 거의 없어 중산층의 타격이 더욱 심하다는 논거다.

국립통계청은 프랑스인들의 평균 구매력 증가율이 지난해 3.3%에서 올해는 0.9%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치뿐이 아니라 이런 현상은 생활 속에서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옷 판매량은 1년동안 10%가 줄었다. 가게 주인들도 연례 행사인 바겐세일을 가리키는 ‘솔드’특수(特需)를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머리도 자르지 않아 고객이 많이 줄었다는 미용실 주인의 하소연도 나온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기자도 ‘생활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그래서 일상의 발견은 늘 소중하다.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2008-08-0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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