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처조카/곽태헌 논설위원
수정 2012-06-20 00:14
입력 2012-06-20 00:00
하지만 요즘에는 신(新)모계사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처가와 가까워지고 있다. 여성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데다, 맞벌이가 늘면서 시부모보다는 친정부모에게 어린 자녀를 맡기는 게 마음이 편한 것도 한 요인이라고 한다.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는 옛말도 있지만 최근에는 자진해서 처가살이를 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시대가 바뀌면서 ‘뒷간과 처갓집은 가까울수록 좋다.’는 것으로 속담도 바뀌는 게 맞을 듯싶다.
역대 대통령 중 처가 쪽 입김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때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DJ 시절에는 DJ 부인 이희호 여사의 친조카인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가 대표주자였다. 그는 대통령선거가 막바지에 이른 1997년 10월 동화은행 영업1본부장 시절 DJ의 비자금 수백억원을 관리해 왔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듬해 퇴출된 동화은행의 이사대우 출신인 그는 1999년 초 파격적으로 예금보험공사 전무에 올랐다. 2002년 초 그가 벌인 보물선 발굴사업에 국가정보원, 해양수산부 등이 동원된 게 알려지면서 DJ의 권력누수도 본격화됐다. 당시 한나라당 장광근 수석부대변인은 “제1국무총리 이형택, 제2국무총리 이한동이라는 말까지 있다.”며 김대중 정부를 압박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20여년간 처조카 이모씨의 이름으로 보유하던 부동산 소유권을 처조카에게 빼앗기게 됐다. 조 회장은 경기도 이천의 임야 6만 8000여㎡를 찾기 위해 소유권이전등기 소송을 냈지만, 1심에 이어 최근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피를 나눈 재벌의 부자간, 형제간에도 재물을 놓고 헐뜯는 등 부끄러운 싸움을 하는 세상이고 보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처조카에게 땅을 빼앗기는 게 그리 속상할 일도 아닐 듯싶다.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2012-06-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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