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팍스 시니카(Pax Sinica)/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수정 2010-11-29 00:42
입력 2010-11-29 00:00
거목은 그늘이 넓다. 북한은 ‘책봉’을 빌미로 이미 그늘 밑으로 자진해서 들어간 것 같다. 이 세상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일곱 군데다. 중국은 특별행정구역인 마카오를 앞세워 포르투갈어 사용권을 하나의 경제협력공동체로 묶어내는 회의를 개최한다. 요코하마의 아시아·태평양 회의에서 후진타오는 일련의 미팅을 했다. 또 다른 특별행정구역인 홍콩의 수장을 불러서 악수한 후 주석은 손바닥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타이완의 국민당 최고 고문을 파트너로 불러서 환담을 했다. 소위 ‘양안관계’의 밀착이 특별행정구역의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위였다.
미국도 참여한 아·태 회의가 모두 환율에 몰입하고 있을 때, 중국은 타이완의 정치적 지위를 가늠하는 포석을 한 것이다.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사건으로 ‘힘’을 과시하였던 중국이 난사(南沙)·시사(西沙)군도에 관한 정치적 지위를 확고히 하는 언행을 쏟아내는 동시에 아세안과의 지정학적 공존을 강조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의 열기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지고, 광서장족자치구의 난닝에는 아예 아세안 타운을 만들었다. 그 속에 일본과 한국의 영사관도 들어가도록 계획된 현장을 보았다.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의 고고문물연구소는 동남아고고학연구소를 병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윈난대학 민족연구원은 동남아시아 제국과의 학술교류를 강화하는 프로젝트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쿤밍시내 남부의 ‘로스완’ 상무성(商務城)은 동남아 상인들로 붐비고, 중국상품을 실은 라오스행 대형 트럭들은 꼬리를 물고 달린다. 인민해방군이 카자흐스탄 육군과 합동훈련하는 모습과 인민해방군 공군기가 카자흐스탄 기지에서 발진하는 모습이 CCTV로 반복해서 방영된다. 중국의 의료진들이 파키스탄의 전쟁피해 지역과 홍수피해 지역의 복구를 위해서 땀 흘리는 장면이 겹쳐지고 있다.
거목이 쓰러지면 주변에 피해가 크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생존전략은 일방적으로만 적용해도 곤란하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힘의 진공상태가 나타나는 순간을 능동적으로 낚아채지 않으면, 부딪치는 고래들 사이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등 터지는 새우가 된다. 새우가 살아가는 방법을 재삼 새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한 세기 전에 국치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또다시 유사한 구렁텅이로 후손들을 몰아넣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생과 화해의 언급이 입장마다 달라지는 것은 먹고 먹히는 국제정치의 기본이다. ‘팍스 시니카’를 향한 숨가쁜 국제정세가 돌아가고 있다.
2010-11-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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