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열정적 인생/장유정 극작가
수정 2010-06-17 00:00
입력 2010-06-17 00:00
숙소에 다 함께 모였는데 평소에는 점잖던 사람들이 미친 듯 소리치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니 어제 밤샘한 사람들 맞나 싶었다. ‘열정적’이라는 말 말고 이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월드컵 하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2002년 여름, 모두가 축구에 열광하고 있을 즈음 나는 국제 학생연극제에 초청되어 슬로바키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어느 화장품 광고의 문구처럼 참 매력적인 나이, 그해 나는 스물일곱이었다. 매력, 사람을 잡아끄는 힘. 참 근사한 단어 아닌가. 하지만 그때 난 전혀 매력적이지도, 혹은 매력적인 대상을 찾지도 못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것도 없는데 가슴 밑이 허전한 게 어디든 떠나 그 뭔가를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비행기 좌석에 배치된 잡지를 보다 시선을 멈추게 하는 사진을 발견했다. 벨베데레 궁전을 배경으로 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사진이었는데, 곳곳에 숨어 있는 황금색이 매우 자극적이었다. 황금색 넥타이를 맨 웨이터, 황금색 테이블보가 깔린 카페, 황금색 액자 속의 황금색 그림. 도시 전체가 황금빛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도시의 색채를 주도하고 있는 이름은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진정한 매혹은 거절할 수 없을 때 더 빛나는 것이리라. 클림트의 황금빛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빈으로 갔다. 직접 본 클림트의 모델들은 하나같이 우아하고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초탈한 듯 몽환적이었다. 그리고 그 눈 속에는 뇌쇄적인 열정과 범접할 수 없는 고결이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아, 시선의 생명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궁전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었다. 샌드위치를 쌌던 은박지가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무심코 봤더니 내 얼굴이 그 속에 비춰져 있었다. 잠시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은 어떤가? 직선적인가? 우회적인가? 혹시 보아도 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살아 있기는 한가?
관람이 끝나고 포스트카드를 한 장 산 뒤 궁전 벤치에 앉아 엽서를 썼다. 주소는 서울 내 자취방, 수신자는 나였다. 두 달 후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이 순간의 깨달음을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 있어도 더 살아 있고 싶은 기분, 열정! 지구 반 바퀴를 헤매면서까지 찾고 싶었던 것이 혹 그것은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집에 돌아와 받아 본 엽서는 장맛비에 홀딱 젖어 있었다. 버리기는 아깝고 읽을 수는 없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지그시 눈을 감아 보았다. 순간 상큼한 여름 자두를 깨문 것처럼 빈에서의 그 생생한 황금빛이 감은 눈 속에 가득 번졌다. 열정적 인생, 클림트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2010년 여름, 그때처럼 월드컵 기간 동안 나는 해외에 간다. 이번에는 인도다. 바뀐 게 있다면 이번엔 영화를 찍기 위해 간다는 것. 8년 전 슬로바키아에서 시작해서 빈을 거쳐 러시아와 중국을 지나 한국으로 건너왔던, 나름의 대장정 후 구상했던 작품이다. 그때보다 나는 얼마나 더 열정적이 되었나. 얼마나 내 삶을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가. 눈빛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요즘이다.
2010-06-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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