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GM의 ‘실패학 스터디’/류찬희 산업부장
수정 2009-06-12 01:06
입력 2009-06-12 00:00
성공의 초석은 브랜드 관리였다. GM은 자동차의 대명사가 됐을 정도로 시보레, 복스홀, 오펠 등 다양한 브랜드를 내놓았다. 기업들의 GM 따라하기도 유행했다. 경영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지은 ‘주식회사의 개념’이라는 책은 GM의 경영 성공 케이스 분석을 근거로 했을 정도다. 하지만 GM의 ‘성공학’은 여기서 그쳤다.
GM은 변화를 읽는 데는 실패했다. 현실에만 안주하고 새로운 기술개발은 뒷전으로 미뤘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자동차 수요 위축으로 성장세가 둔화하기 시작했지만 GM은 덩치 큰 ‘미국식 자동차’만 고집하는 우를 범했다. 미국 내 ‘빅3’간 경쟁에 함몰돼 밖을 내다보지 못했고 변화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1980년대 들어서는 북미지역 자동차 공장 11곳의 문을 닫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사브와 GM대우를 인수하는 등 발버둥쳤지만 소비자의 마음은 이미 떠나버린 뒤였다. 도요타 등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연비가 적게 들고 날렵한 고성능 자동차로 전 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홀렸지만 GM은 기름을 많이 먹는 대형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트럭 개발에 몰두하는 등 세계 자동차 시장 흐름과 반대의 길을 걸었다. 노사관리도 탄력성을 잃었다. ‘귀족노조’로 불릴 만큼 근로자들은 이익을 챙겼다. 2007년에는 노조에 퇴직자 건강보험기금을 출연하면서 엄청난 부채를 안게 됐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돈은 노조와 함께 해마다 잔칫상 차리는 데 모두 써 버렸다. 위기관리 능력도 떨어져 글로벌 금융위기에 속수무책 당하고 몰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제 세계의 기업들이 GM의 ‘실패학’을 스터디하고 있다. 우리의 자동차업계는 어떤가. 현재로서는 안타깝기만 하다. 쌍용차 사태가 좋은 예다. SUV와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고꾸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로 몇 개월치 월급이 날아갔고, 노후차량 교체에 따른 판매량 증가 효과도 보지 못했다. 위기를 기회로 살릴 수 있는 호기를 놓쳐 버렸다.
현대·기아차에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도 완벽한 혼류생산 체제가 정립되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노사관계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노동조합 천국으로 불린다. 그런데 현대차 미국 몽고메리 현지 공장은 노조가 없다. 같은 라인에서 승용차와 SUV를 동시에 생산한다. 현대차가 미국에 수출하는 차량의 절반은 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5년 간 근로자를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을 정도로 잘 운영된다. 바람직한 노사상생의 현장이다.
국내에서도 몽고메리 공장 경영을 접목했으면 한다. 노사는 시장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이 기회에 일감 나누기와 완벽한 혼류생산 체제를 갖춰야 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노사관계는 노사 공멸을 자초하고 만다. GM의 실패학을 완벽하게 스터디하고 나아갈 길을 확실히 정립할 때다.
류찬희 산업부장 chani@seoul.co.kr
2009-06-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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