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수잔 브링크/함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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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2-23 01:18
입력 2009-02-23 00:00
해외입양 관련 국제기구인 월드파트너스어답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939명의 고아가 해외에 입양됐다. 중국 과테말라 러시아 에티오피아에 이어 세계 5위의 고아 수출대국이다. 같은 해 인구 8억인 인도가 416명(9위)의 고아를 외국에 보낸 것에 비하면 인구 5000만명에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정말 낯뜨겁게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가 해외 입양을 시작한 것은 6·25전쟁 직후 1만 5000명의 전쟁고아가 입양돼 미국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해외입양은 1961년 ‘고아입양특례법’이 만들어진 이후 제도화돼 계속됐고 1985년 8837명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2006년까지도 매년 2000명 안팎의 아동이 해외에 입양됐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국내 입양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입양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려는 정부와 입양전문기관들의 노력으로 최근 국내 입양아 수가 해외 입양아를 추월한 것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아동수출 대국’이다.

1958년부터 2007년까지 16만 1000명의 어린이가 새 보금자리를 찾아 한국을 떠났다. 수잔 브링크(본명 신유숙)도 그중 한 명이다. 고 최진실이 열연했던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이다. 1963년생으로 네살 때 스웨덴의 가정에 입양된 그녀는 낯선 환경과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 틈에서 느끼는 소외감, 가족에 대한 그리움, 정체성 혼란 등으로 일그러진 성장기를 보냈다. 18세에 미혼모가 되고 실연으로 두 번째 자살을 시도한 그녀는 24세에 웁살라대학 종교학과에 입학해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던 중 MBC-TV의 입양아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친어머니를 찾는다.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입양아동에 대한 존엄성을 일깨웠으며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수잔 브링크가 지난달 23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46세라는 짧은 삶이었지만 그녀가 남긴 메시지는 우리 가슴에 강하게 남았다. 이 땅에서 살려고 태어난 아기들을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나라로 보내 버리는 ‘사회적 폭력’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09-02-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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