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베르테르 효과/박재범 수석논설위원
수정 2008-09-10 00:00
입력 2008-09-10 00:00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1774년 독일에서 발간한 이 서간체의 소설은 당시 큰 충격을 던졌다. 권총 자살이 유럽에서 번진 탓에 한동안 금서가 됐다. 이런 파괴력 때문에 소설이 나온지 200년이 되던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는 유명인의 자살 이후 자살이 급증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엊그제 유명 탤런트의 자살 사망사건으로 이 용어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각종 조사 결과, 십여년 전부터 한국에서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를 나타내는 자살률은 10년 전에 비해 갑절 가까이 높아졌다.1997년 13명에서 지난해 24.8명이 됐다. 하루 평균 3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셈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인 멕시코보다 무려 6배나 높은 수치다.
특히 ‘베르테르 효과’가 뚜렷하다. 고려대 보건대학원 유정화씨의 석사논문에 따르면, 영화배우 이모씨가 자살한 2005년 2월22일부터 1개월간 총 1160명이 자살 사망해, 유명인의 자살 사망이 없던 다른 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25명이 많았다.
이같은 사실들은 자살이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문제로 등장했음에도 자살에 대한 공동체의 위기의식 수준은 여전히 낮다. 국가 예산에서 자살예방 사업비는 고작 5억원이다. 자살 원인 등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드물다.
때마침 10일이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앞으로 자살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는 주인공 베르테르와 달리 83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괴테가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뭐라 할지 궁금하다.
박재범 수석논설위원 jaebum@seoul.co.kr
2008-09-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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